::: 허건(許楗)   :::


1908년(융희 1)∼1987년. 한국화가. 호는 남농(南農). 전라남도 진도 출생.
할아버지는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小癡 許鍊), 아버지는 미산 허형(米山 許瀅)이고
어머니는 나주정씨,경주이씨,광산김씨 세 분이며 배위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고

시조로부터 33세손이고 충정공 허종의 15세손이다.

[ 남농 허건 연보 ]
1908년 6월 12일 전남 진도군 신의면 사천리에서 미산 허형의 5남중 4남으로 출생
1925년 목포 북교 국민학교 졸업
1926년 해남 화원면 청룡리  남양 홍씨 일서의3녀 홍막녀와 혼인
1930년 제 9회 선전(鮮展)에 입선 후 22회 까지 13회 입선
1942년 일본 대동남종원전 입선

1943년 일본 문부성전 입선
1946년 남화 연구원 개원
1955년 국전 초대 작가
1957년 백양회 창립회원
1958년 목포문화협회(예총 목포지부) 초대 지부장
이후 1965년까지 8년간 연임

1960년 국전심사위원(제9회), 목포 문화상 수상
1975년 목포난석회 초대 회장
197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수상(10.20)
           서울 통인가개화랑 개관 초대전
           (첫 서울 개인전)

1977년 서울 신세계 백화점 미술관 초대전
1979년 성옥 문화상 수상
1980년 동아일보 세종문화회관 회고전
           목포대학교에 장학금 기탁
1981년 예총 목포지부에 남농미술상 제정
           목포시에 수석 2천여점, 3대의 작품
            (소치, 미산, 남농), 목물(木物)등 기증
1982년 대한민국 문화훈장 서훈
           운림산방을 복원(지방문화재 51호로 지정됨)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 원로 회원
1984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 저명인사 전기편에 수록됨
1985년 인도 정부 국제저명인사록에 기재됨  남농 기념관 준공 개관
1987년 월남 이상재 장(章)수상 운림산방을 진도군에 기부채납함
1987년 11월 5일 향년 80세로 별세 하였다.

어려서부터 집안 전래의 그림 재능을 나타냈으나 화가생활의 빈궁함을 대물림하지 않게 하려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목포상업전수학원에 들어가 상업을 공부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타고난 그림 자질이 독학으로 발휘되어, 1930년 조선미술전람회(鮮展)동양화부에 수묵담채의 사실적 풍경화가 첫 입선한 뒤로, 1944년까지 연달아 입선과 특선에 오르면서 전통화단에 진출하였다.
1940년의 수묵채색화 [금강산 보덕굴(普德窟)]과 같은 무렵의 [산촌 山村]은
현존하는 광복 전의 대표작이다.
광복 후에는 그 전부터 지니고 있었던 경쾌한 붓놀림과 현실감의 담채 및 농채의 기법으로 전통적인
산수화의 의취(意趣)와 현실적 시각의 표현감정을 특질적으로 조화시키는 수법으로 시골 풍정을
주제삼은 [4월 산촌록(山村錄)](1948)·[산사 山寺](1955)· [운림동 소견 雲林洞 所見](1957),
그밖에 무한한 향토애의 계절적인 산수풍경화를 연작하였다.

1952년부터는 국전(國展)에 참가하여 추천작가·초대작가·심사위원을 역임하면서 작가적 명성을 굳혔고,
1957년 김기창(金基昶)·이유태(李惟台)·김영기(金永基)· 김정현(金正炫)·박내현(朴崍賢)·천경자(千鏡子) 등과
중진 한국화가단체 백양회(白陽會) 창립에 참가하고, 1970년대 중엽까지 지속된
그 연례회원작품전에 출품하였다.

18세 때부터 목포에 정착한 이래 그곳을 떠나지 않은 철저한 향토고수의 작품활동은, 역시 진도출신의
같은 양천허씨가문 연장자로 1920년대 이후 호남을 대표한 남종화풍의 대가였던 광주(光州) 정착의
허백련(許百鍊)과 더불어 호남전통화파의 상징적 두 고봉(高峯)으로 일컬어졌다.

1979년 목포 성옥문화상(聲玉文化賞)을 받았으며, 1982년 은관문화훈장 및 목포시민상을 수상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에 피선되었으며, 그리고 1985년 전라남도 무등문화상을 수상하였다.

묘는 무안군 삼양면 왕산리 선산 묘좌 쌍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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