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난설헌(許蘭雪軒)  :::


1563년(명종 18)∼1589년(선조 22).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
본명은 초희(楚姬). 시조로부터 21세손이다.
자는 경번(景樊)이고 호는 난설헌(
蘭雪軒)이다.

아버지는 대사헌을 지낸 초당(草堂) 허엽(許曄)이고, 어머니는 정부인 강릉김씨(江陵金氏)이다.
허봉(許
篈)의 동생이며 허균(許筠)의 누님이다.

아버지가 첫 부인 청주한씨(淸州韓氏)에게서 성(筬)과 두 딸을 낳고 사별한 뒤,
강릉김씨(江陵金氏) 광철(光轍)의 딸을 재취하여 봉·초희·균 3남매를 두었다.

15세(1577)에 안동김씨(安東金氏)의 김성립(金誠立)에게 시집갔다.
김성립(金誠立)의 자는 여견(汝見),호는 서당(西堂)으로
기축년(1589년) 증광시에 문과 병과로 급제하고 벼슬은 홍문관 정자(正字)에 그쳤다.

난설헌은 강릉시 초당동 475-3번지에서 태어나 7세무렵까지 살면서
이웃인 사천면 화평리164번지에 있는 외가(외조부=김광철)를 오가며 유년기를 보냈고
15세에 시집갈 때까지 문학의 수학기를 거쳤다.

일찍이 시인 손곡(蓀谷) 이달(李達)에게 시를 배워 천재적인 시재(詩才)를 발휘 했으며
남편과의 금슬이 원만하지 못한데다 친정의 겹친 화액(禍厄)에 따른 고뇌(苦惱)를
시작(詩作)으로 달래어 섬세한 필치로 여인의 특유한 감상을 노래했으며
애상적(哀傷的)인 시풍의 독특한 시세계(詩世界)를 이룩했다.

그의 작품 일부를 동생 균(筠)이 명나라 사신이며 시인인 주지번(朱之蕃)에게 줌으로써
중국에서 시집(詩集) [난설헌집(蘭雪軒集)]이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으며
1711년에는 분다이야(文台屋次郞)에 의해 일본에서도 간행되어 애송되었다.

조선 봉건사회의 모순과 잇달은 가정의 참화로, 그의 시 213수 가운데 속세를 떠나고 싶은 신선시가
128수나 될 만큼 신선사상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묘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경수마을뒷산 안동김씨 선영(先塋)에 있으며
경기도 기념물 제90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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