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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1-01-19 (수) | ㆍ조회 : 2313 |
[역사속의 강원인물] '만민평등 혁명을 꿈꾸다'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 강원일보 / 2011-1-14 '교산 허균 선생' 전문가 지상좌담 교산 허균(許筠·1569~1618년)은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을 지어 사회의 모순을 개혁하고 이상향을 그리고자 했던 인물이다. 사회제도의 모순과 정치적 부패상을 질타하고, 정치사회개혁을 주창하는 등 실천적인 삶을 살다 정치적인 음해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된 그의 삶을 재조명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또 그의 문학세계와 문인이 바라본 허균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었다. 전순표 “지역주민 참여·학계 지원 등 재조명 적극 나설때” 강동엽 “시문학·논설·소설 통해 사회개혁 끊임없이 모색” 김도연 “그가 꿈꾸었던 세상 홍길동전이 되어 우리 곁에” -교산 허균을 재조명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 필요할까 △전순표 허균허난설헌선양사업회 이사=교산 허균은 시문(詩文)에 뛰어난 천재 여류시인 난설헌 허초희의 동생이며, 조선 중기 문인이며 혁명의 꿈을 키우다 죽음을 맞이한 정치 사상가다. 이러한 교산의 재조명 작업은 무엇보다 교산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학계에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400여년 전 교산의 사상은 지금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대를 앞서가고 있다. 그의 호민론에 담겨 있는 변화와 개혁사상은 오늘날에도 반드시 추구해야 할 살아 있는 가치다. 또 그의 만민평등사상, 국방이론 등도 그가 훌륭한 휴머니스트이며 국방이론가임을 방증한다. 즉 교산에 대해 바르고, 체계적이고, 깊이있게 평가되고 연구돼야 한다. 둘째로 이러한 바탕 위에서 그의 사상을 보편적 가치, 추구해야 할 가치로서 현재와 미래로 끄집어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여기에 그 작업의 중심 역할을 해야 하는 위치의 한 축에 있는 것이 선양회다. 그리고 다른 한 축은 강릉시다. 마치 수레의 두 바퀴와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 강릉시에서는 재조명에 필요한 기초적인 행정업무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즉 지금까지 강릉시에서 해 온 하드웨어를 갖추는 일이다. 즉 교산, 난설헌의 생가터를 확보한 일이며 박물관을 짓고, 경포호수와 연결되는 다리를 놓고, 주차장과 도로를 닦았다. 아쉬운 것은 허균이 태어난 곳으로 여겨지는 사천 애일당 외갓집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박물관의 경우 너무 작아 답답하게 느껴지며 다리의 경우 너무 예술적이지 못한 것이 흠이다. 바라기는 하드웨어 작업에도 교산의 얼이 배어 있었으면 좋겠다. 선양회에서는 소프트웨어 작업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즉 지금까지 매년 해 온 문화제를 좀 더 질적인 변화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 사업을 문화제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연중계획을 세워 다양한 기획사업을 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사무국이 활성화돼 얼 선양업무에 온전히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교산을 연구하는 학계를 지원하는 일도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한창 논의, 진행 중에 있는 말글의 통일성을 갖는 작업도 들 수 있다. 그러니까 현 선양회의 경우 원래 이름이 사단법인 허균·허난설헌선양사업회인데 여기에 호와 이름이 섞여서 쓰이고 있다. 즉 호로 쓰든지, 이름으로 쓰든지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로 지역주민의 힘을 재조명 작업에 주체적으로 참여시키는 일이다. 강릉 초당이 중심인 점을 고려해 볼 때 이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지역민의 폭넓은 참여와 중심 역할이 무엇보다 필요한 것으로 반드시 이끌어 내야 할 과제다. -허균의 문학세계를 어떻게 이해하면 될까요 △강동엽 강원대 국어국문학과 교수=허균의 문학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부분으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곧 그가 자기의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채택한 문학 양식이 그것이다. 첫째는 `시문학' 부분이다. 그는 뛰어난 재주를 지녔으면서도 시 창작보다는 `국조시산'과 같은 시선집이나 `학산초담', `성수시화'와 같은 시화집을 통해 우리의 문학 전통은 물론 당대의 시문학에 담아야 할 정신이 무엇인지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우리의 민족 문학을 고취하는 일이며, 이 바람은 우리의 시문학사를 정리하는 것에서 찾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역대 우리의 시 작품들을 대상으로 `시선집'을 정리할 때 보여준 잣대는 그가 가진 공평무사한 비평적 엄격성과 시대를 초월하는 이상주의적 태도와도 연결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는 `호민론', `유재론', `소민론'등 논설을 통해 동시대가 처한 현실적인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안을 제시한 점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신을 포함한 당대 중심인물들이 지향하는 유교적 덕목에 비친 타락상을 고발한 점이다. 그의 이 용감한 태도는 동시대의 치부를 표면화해 조선사회를 개혁하고자 했다. 셋째는 그 외 소설 `홍길동전'이나 한문으로 쓰인 다섯 편의 `전'에 나타난 그의 생각이다. 위의 작품들에서 나타난 가장 중요한 점은 허균이 내세운 주인공들의 특징이다. 곧 이들은 한결같이 재주는 있으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들인 점이다. 조선 중기의 사회현상으로 보면 이들 인물은 소외계층이다. 이 소외계층은 집권자들의 자의에 의해 정해진 한품(限品) 제도의 희생자들로서 재주와 능력에 관계없이 천시됐다. 그런 인물들을 중심으로 문제점을 해결함으로써 앞으로 수행돼야 할 개혁에 필요한 새로운 인간상을 구현한 것이라 하겠다. 그 대표적 인물이 `홍길동'이며, 이 주인공은 전쟁과 당파로 피폐해진 조선 중기 사회를 개혁할 `새로운 인물'의 표상으로 제시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허균의 문학세계는 그 양식적 한계성보다는 각기의 양식 속에서 일관되게 흐르는 통일성이 강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곧 동아시아 지정학적 한계를 넘어 우리의 문학적 전통을 세우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이 풍요로울 수 있을 방법의 모색, 그것은 조선 중기 사회의 혼돈을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의 창조였다. 그래서 그의 문학세계의 위대성은 자신이 포함된 세계를 뛰어넘어 동시대, 그리고 미래까지 이어지는 원망공간을 창조한 일이며, 그 구현을 위한 인물을 작품 속에 제시했다는 점이다. -문인의 시선에서 본 허균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김도연 소설가=사실 부끄럽게도 나는 허균이란 사람을 잘 알지 못했다. 최초의 한글소설을 쓴 `홍길동전'의 저자란 사실 정도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누이가 허난설헌이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고 그가 광화문 앞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한 일도 마찬가지다. 그때까지 내게 있어 허균은 그의 소설에 나오는 저 유명한 말 `서자로 태어나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가 거의 전부였다. 활빈당이며 율도국도 학교를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잊어버렸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허균은, 홍길동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내 앞에 불쑥 나타났다. 이를테면 면사무소나 우체국, 농협 같은 곳에서 나는 홍길동을 다시 만났다. 각종 서식의 견본서 속에서 홍길동은 자신의 이름을 태연하게 걸어놓고 있었던 것이다. 우습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그것은 남미의 혁명가 체 게바라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면서 그의 얼굴이 인쇄된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아 씁쓸했다. 물론 홍길동의 시간에서 지금 여기까지 오는 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다. 어쩌면 이 시대는 그때보다 더 홍길동이 꿈꿀 수 있는 자리가 좁아진지도 모른다. 그러하기에 길동이가 갈 곳은 견본서 속이 유일할지도 모르겠다. 가끔 대관령에서 흘러내려온 낮은 산자락 끝에 자리한 교산 시비 근처를 기웃거린다. 초당의 서늘한 숲속을 걷기도 한다. 나 자신이 나태해질 대로 나태해졌다고 느껴질 때 그곳에 가서 오래전 허균이 꿈꾸었던 세상을 가만히 더듬어본다. 정리=김상태기자 stkim@kw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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