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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암나루에 사라진 소요정(逍遙亭)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8-07-23 (월) 15:15 ㆍ조회 : 250
14. 정선 <소요정> - 공암나루에 사라진 소요정 / 최열 그림의 뜻| 한국의 전통문화
   
   

14. 정선 <소요정> - 공암나루에 사라진 소요정 / 최열 그림의 뜻

 

 

 

 

하늘과 강물이 달라붙는 곳

 

가는 배는 바람을 빗겨 받고

 

저문 산엔 어느새 자줏빛 돌아

 

서리 맞은 나무는 더욱 붉어라

 

- 박제가, <주행잡영(舟行雜詠)> 8수 중, 정유각집(貞蕤閣集)

 

   


 

 

강서구 양평동 염창산에서 한강을 따라 서쪽으로 증산(甑山)을 지나가면 양천향교가 있던 궁산(宮山)을 다 가지 못해 가운데 탑산(塔山)이 있다. 탑산은 지금은 허준(許浚, 1546-1615)의 아호를 딴 구암공원(龜巖公園)이다. 탑산엔 구멍이 있는 바위 공암(孔岩)이 있고 여기서 한강으로 빠져 나가면 작은 섬이 솟아 있어 이 바위를 광주바위[廣州岩]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강변에 올림픽대로가 들어서서 풍경을 모두 망쳐버렸지만 이곳 탑산 앞이 나루터인 공암진이었다. 강 건너 북쪽에 마주한 나루터인 행주나루가 있어 남과 북을 잇는 유통지구였고 고려시대 땐 개성에서 남도를 잇는 교통 요충지였으며 조선시대 땐 한양 사람이 양화나루를 통해 강화도로 나아갈 때 공암나루로 건너다녔다.

 

 

그런데 광주바위 섬은 아주 오랜 옛날 큰 홍수가 지자 한강 위쪽 광주에서 떠내려 오다가 하필 이곳 공암 앞에 멈추었다. 비가 그친 뒤 소식을 들은 광주 관아는 섬을 자기 관할 땅이라고 하여 양천현(陽川縣)으로 하여금 세금을 내라고 하였다. 이렇다 할 작물도 없으므로 섬에서 나는 싸리나무를 베어 싸리비 세 자루를 만들어 보내다가 양천 현령은 매번 귀찮기도 하여 바위 섬도 소용 없으니 가져가 달라고 통보하였다. 섬을 떼갈 수도 없어 어려워진 광주는 관할을 포기하고 소유권을 양천에 넘겨주고 말았다. 자꾸 일본이 동해의 독도를 제 것이라고 하는데 이익이 없으면 저럴리 없건만 독도 주위 엄청난 넓이 바다를 제 관할 아래 둘 수 있고 거기 잠겨 지천으로 널린 자원을 차지할 욕심이라 아마도 광주바위 섬 주위를 강까지 관할 할 수 있었다면 광주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익 없이 움직이는 일은 없는 모양이다.

 

 

화가 정선(鄭敾, 1676-1759)은 이곳 공암과 광주암을 그려놓고 정작 제목은 소요정(逍遙亭)이라 하였다. 소요정이란 중종반정(中宗反正) 공신 심정(沈貞, 1471-1531)의 아호인데 1518년 형조판서 물망에 올랐을 때 신진사류 조광조(趙光祖, 1482-1519)의 반대로 임명받지 못하자 물러나 이곳 탑산 위에 정자를 짓고 울분을 달래던 시절의 것이다. 다음 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일으켜 사류를 일망타진하고 권력을 전횡하다가 동궁(東宮) 저주사건에 연루되었음이 드러나 유배지인 평안도 강서에서 기묘삼간(己卯三奸)으로 지목당해 사약을 받아 죽고 말았다. 뒷날 다른 이들이 명예를 회복하였음에도 심정만은 소인배로 간주당해 비아냥의 대상이었지만 살았을 때는 꾀주머니라고 하여 지낭(智囊)이란 별명으로 불리웠다. 그러니까 아득히 거닌다는 아름다운 뜻의 소요정을 세우고 그윽한 은일군자 행세를 하면서도 뒤로는 정적을 깨뜨릴려는 추악한 음모로 꾸미며 부지런한 발걸음을 재촉하였던 것이니 저 소요정이란 이름이 오히려 부끄럽다.


 

아마도 정선이 그림 그릴 무렵엔 저 심정의 음모처인 소요정이란 간곳 없었을지 모르겠으되 그래도 제목만은 소요정이라 했던 뜻이 있을게다. 이 곳 풍경이 그대로 하나의 그윽한 정자요, 장자가 남화경에서 읊조린 바 저 소요유(逍遙遊)할 만한 땅이므로 그랬을지 모르겠다. 심정의 흔적 따위는 지워버린 뒤 있는 풍경 그냥 그대로 천연스러움을 그린 게다. 또한 바위 섬은 마치 꽃봉오리처럼 봉긋하게 하고 탑산의 공암은 마치 정선이 즐겨 그리던 금강산 숱한 봉우리와도 같게 하였으니 깊고 깊은 심산유곡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이 그곳이라, 소요하기에 너무도 좋은 곳 아닌가.

 

 

바로 그 공암은 허가바위라고도 불렸는데 양천허씨(陽川許氏)의 시조 허선문(許宣文)이 이 바위에서 나왔으므로 그렇게 부르는데 허선문은 견훤 정벌을 가던 고려 태조 왕건이 이곳 공암나루를 건널 때 도강과 군량미를 협력하여 공암촌 주인으로 임명받았다. 700년 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란 허준은 어의(御醫)로 당상관(堂上官)에 이르렀고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엔 선조를 끝까지 모심에 공신으로 책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허준은 긴장의 끈을 풀지 않았다. 내의원에 봉직하는 가운데서도 10년의 뼈를 깎는 노력 끝에 1610년 드디어 위대한 의학서인 동의보감을 완성하였다. 광해 또한 모셨는데 일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자 광해는 허준에게 부원군을 제수하였다. 더러운 짓을 거듭한 심정은 사라지고 아름다운 업적을 쌓은 허준만이 살아남았거니 뒷날 뛰어난 재사 박제가(朴齊家, 1750-1805)가 광흥창(廣興倉)을 출발해 공암나루 지나 동쪽으로 궁산을 지나칠 때 배 위에서 부르던 노래 지금도 들려온다.



                  [출처: 카페, 오디오와컴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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