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최근댓글 보기 - 최신 댓글만을 순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최근댓글 보기

  허균문학의 지역형상화와 전승설화 고찰 [장정룡 / 강릉원주대 교수]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8-10-26 (금) 10:01 ㆍ조회 : 79
         허균문학의 지역형상화와 전승설화 고찰

  [국문초록]
                                            장정룡 (강릉원주대 교수)       

 강릉에서 태어난 교산 허균(1569~1618)은 천부적인 감수성을 지녔으며, 지역문화에 대하여 남다른 관심을 보였다.  여러 문학작품가운데 고향 강릉에 대한 시적 형상화와 지역설화를 남겼다.  주지하듯이 교산문학 작품에 있어서 지역과 관련한 내용이 적지 않음은 주목되는 바이다.
 허균은 애향시 여러 편을 남겼고, 흥미로운 지역설화도 풍부하게 남겼다. 그의 강릉사랑은 각별하여 남다른 관점에서 고향은 그리움의 시적 대상이었다.  현재 남아서 전하는 허균의 시작품 천여 수 가운데 시심에 형상화된 고향(故鄕) 표현은 약 백여 수의 시편에서 다양하다.  특히 '향심(鄕心)' '향산(鄕山) '향관(鄕關)' 향몽(鄕夢)' 등 '향'을 중심어로 사용하였고, 고유명사를 그대로 사용하여 '강릉' '명주(溟州)' '임영(臨瀛)' '사촌(沙村)' '영주(瀛州)' '영동(嶺東)' '관동(關東)' '감호(鑑湖)' '애일당' '이설당' '초당' 등을 썼다.  자신의 집을 '관동구업(關東舊業)' 구업강릉댁(舊業江陵宅)' '감호구댁(鑑湖舊宅)'이라 하였으며,  고향의 간접적인 표현으로 '고원(故園)' '고산(故山)' '원려(園廬)' '가산(家山)' 등을 시어로 활욜하였다.
 50세 동안 만리 길 다섯 차례 요하를 건너는 힘든  중국 사행길에서 압록강을 건너며 머리를 돌려 바라본 것은 고향땅이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37개의 이름난 정자를 떠올리기도 했다.  스스로 벼슬길에 나가면 항상 80일을 못 버텼다고 술회하면서도 그가 돌아갈 '귀전(歸田)' '환향(還鄕)'을 굼꾸었다.  그렇듯이 강릉은 그에게는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었고 시심의 원천이기도 하였다.
 허균은 자신이 듣고 보았던 강릉지역의 전승담을 기록으로 남겨는데, 그것은 고향사랑의 또 다른 관심표현이었다.  대표적인 내용은 신라 때 명주군왕의 어머니 연화부인명주가에 얽힌 이어척소(鯉魚尺素)이야기, 김유신 장군의 대관령산신 좌정이야기, 자신이 태어난 사천 애일당 교산(蛟山)의 용(龍)이야기, 정동진 동해용왕이야기, 고려명기 홍장고사 등을 듣거나 문헌에서 찾아냈고 일부는 직접 채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직접 먹어본 강릉의 특별한 음식에 대한 요리방법과 전하는 이야기도 남겼다.  허균의 이러한 설화기록자의 높은 관심에서 수집된 지역설화는 신화, 저널의 모티브를 지닌 것으로서 한국구비문학 자산이며, 중요한 지역문회유산이라고 하겠다.

[출처: 2018 교산 허균 서거 400주기 추모 국제학술대회 자료집, 218면]
허세광
2018-10-28 16:26
잘읽었습니다.
교산공께서는 부패한 조선왕조시대에 있어서는 않되고 해서도 않될 사회적구조를 바로 잡으려고
시대를 앞선 생각이 그 부패한 시대는 이해할 수 없었고, 양반집에서 태어나 서얼차별의 타파와 교류
하므로 서얼출신으로 오해를 받기도 하였하지만 그런 썪은 정치를 혁파하려고 애쓰시므로 결국은
대북파를 이끌었던 제1인자 이이첨의 농간에 할말도 못하고 형장의 이슬이 되고 말았습니다.
감사합니다.
   
  0
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