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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말에 띄우는 '새해 편지' [허영섭], 2018. 12. 27.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8-12-27 (목) 08:39 ㆍ조회 :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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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띄우는 '새해 편지'

2018.12.27

편지를 부치면 1년 뒤에 배달해 주는 우체국 서비스가 있다. 추억을 배달해 준다는 ‘느린 우체통’ 제도가 그것이다. 까맣게 잊고 있던 편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지난 생각과 모습을 돌이켜볼 수 있다는 점에서 과거의 여운을 느끼게 될 것이다. 더불어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각자의 입장에서 아내나 자녀, 부모님 앞으로 편지를 띄울 수도 있을 것이고, 연인이나 친구에게 지금의 마음을 감춘 채 사연을 전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 편지에 있어서만큼은 세월의 흐름이 한 해 동안 늦춰지는 셈이라고나 할까.

지난해 이맘때 내 자신에게 ‘느린 편지’를 부쳤다고 가정해 본다. 시기적으로 연말을 맞고 있다는 아쉬운 심사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출발선상에 섰다고 생각한 게 불과 엊그제였던 것 같은데 어느새 훌쩍 한 해가 지나가 버렸다. 그래, 나는 편지에 무슨 내용을 적었을 것인가. 그 내용이 내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었다면 과연 얼마나 성취됐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나 그렇듯이 답변은 일단 부정적이기 마련이다. 세월을 함부로 보내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후회스럽지 않게 지냈다고 내세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해를 보내면서 편지를 쓴다면 과연 어떤 내용으로 채울 것인가. 새로 맞이하는 한 해를 더욱 알차고 보람있게 보내자는 나름대로의 격려일 수도 있겠고, 더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야무진 다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창 시절에 비한다면 무엇을 이루겠다는 목표의식은 상당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젊어서 이루지 못한 것을 육십 중반에 다시 욕심을 낸다는 것이 지혜로운 판단이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는 자체가 어차피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도 지난 계절의 아릿한 기억만큼은 추억거리로 간직하고 싶다. 낯선 골목길이나 어느 여행지에서 겪었을 자기만의 기억이다. 무성했던 가로수 이파리들이 바람에 떨어져 이미 자취도 없이 흩어졌을망정 그 푸른 잎들을 바라보며 젊은 시절을 되돌아보던 한때의 기억을 흔적으로나마 새겨두고 싶은 것이다.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시절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법이다. 나이테가 더하고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다시 쓰는 편지에는 여름날의 나뭇잎을 한 장 부칠 것이다.

주변 일에 부대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겠다는 각오도 편지 문구의 한 줄을 차지할 게 틀림없다. 세월이 지나면서 대인관계에서의 감정이 무뎌질 법도 하지만 상처 자국은 어쩐지 더욱 뚜렷해지는 것만 같다. 워낙 품성이 좁은 탓이겠으나 나 혼자만의 얘기도 아니다. 머리가 희끗해지면서 사람 관계가 깊어지기보다 자꾸 서먹해진다는 얘기를 듣게 되는 것이 그런 때문일 것이다. 설령 상처를 받지 않는다고 해도 오가는 연락이 뜸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도 여러 사람의 이름이 내 기억에서 멀어졌고, 나 또한 그들의 명단에서 지워졌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디 대인관계에서뿐이랴. 우리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온갖 현상들이 믿음을 주기보다 대체로 실망스럽게 귀결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그동안의 경험은 여실히 가르쳐준다. 개인적으로 이해관계가 있다거나 사회적인 기대 수준이 높아서도 아니다. 서로 명분을 앞세워 이용하려 들다가도 쓸모가 없다고 여겨지면 등을 돌리는 게 당연한 세태가 되어 버렸다. 지도층에서조차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탈법을 저지를수록 재주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세상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고민하며 몸부림치기보다 스스로 울타리를 둘러치고 들어앉는 방안을 선택하기 십상이다. 세상사에 휩쓸려 상처를 덜 받으려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세상사가 모두 기대에 못 미쳐 흘러가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주변 사람들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워할 일이다. 최근만 해도 온갖 험한 일들이 벌어져 안타까운 목숨들이 스러져가지 않았는가. 새해에는 제발 모든 사람들이 편안히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조금은 부족하더라도 서로 여유를 갖고 다독이면서 지낼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지금 띄우는 편지가 도착하게 되는 내년 말의 세상 풍경은 또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면서도 착잡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식으로 바뀌어 있어도 너무 들뜨거나 실망하지 않으리라. 새해 편지에 담는 스스로의 다짐이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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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허영섭

이데일리 논설실장. 전경련 근무. 경향신문과 한국일보에서 논설위원 역임. 미국 인디애나대학 저널리즘스쿨 방문연구원. '일본, 조선총독부를 세우다, '대만, 어디에 있는가', '영원한 도전자 정주영'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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