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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매당공파(泛梅堂公派 )28世 충장장 諱 허항(沆)
ㆍ작성자 : 허유권 ㆍ작성일 : 2019-03-19 (화) 05:32 ㆍ조회 : 906

구성 병자보(1936년) 기록



자(字)는 원숙(元琡)이요. 아버지는가선대부(嘉善大夫), 행인산첨사(行麟山僉使) 허수(秀)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고 1758년 영조34년에 태어났다.1812년(순조12)에 홍경래(洪景來) 난이 일어나자 참전하여 1812년에 순절(殉節)하고 본조(本朝) 임신공신(壬申功臣)으로 資憲大夫,兵曹判書,三道統制使,行羽林衛將 兼 慶尙右道水軍節度使로 추증 받고 왕의 특명으로 평북정주(平北定州) 표절사(表節祠)에 배향되었다. 정부인(貞夫人)은 경주김씨 김정정(貞靜)의 따님이시고 外祖는 김이연(履淵)이시다.기록에 의하면 정부인(貞夫人)께서는 부군이 순절하자 10여일 동안 곡(哭)을 하며 식량을 먹지 않고 죽음으로 예를 다하였다 한다.묘(墓)는 사림제유(士林齊龥) 특명으로 정려(旌閭)되고.의주부내(義州府內) 남산(南山) 북락(北落) 을좌(乙坐)에 부군과함께 모셔져있다.  





승전기적비(勝戰紀蹟碑)

 

승전을 기념하기 위한 비 (승전비(勝戰碑))

 

홍경래가 난을 일으켰다. 그때에 적에게 함락된 주군(州郡)은 박천(博川) · 가산(嘉山) · 정주(定州) · 곽산(郭山) · 선천(宣川) · 철산(鐵山) · 용천(龍川) · 태천(泰川)이었고, 성을 지켜 적이 감히 범하지 못한 곳이 청북(淸北) · 의주(義州) · 청남(淸南) · 안주(安州)였다. 떨쳐 일어나 자신을 돌보지 않고 위험에 닥쳐 목숨을 바친 자는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 및 그의 아버지 정노(鄭魯), 의주인(義州人) 허항(許沆), 정주인(定州人) 한호운(韓浩運) · 백경한(白慶翰), 가산(嘉山)의 김대택(金大宅), 영남(嶺南)의 제경욱(諸景彧), 안주(安州)의 임지환(林之煥)이다. 지환(之煥)은 납서(蠟書)를 가지고 의주(義州)에 갔으나 적을 만나서도 굽히지 않고 죽음에 나아가 하늘을 우러러 불복하여 말하기를, “나는 하늘의 해를 보고 죽는다.”라고 하였다. 생략.....



()은 다음과 같다.



승평(昇平)의 해가 오래되니 백성들이 병화를 몰랐는데

갑자기 적을 만나고 보니 날짐승이 숨고 길짐승이 놀라는구나.

역적 경래(景來)는 요망함을 드러내서 멋대로 발광을 하여

선천(宣川)과 정주(定州)같은 고을들은 차례로 함락되었구나.

도망 온 기마가 먼저 이르러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였으니

인심의 향배는 적 세력의 경중에 달렸도다.

너무도 위태로와서 평안함을 도모할 때이니

다행히 병이(秉彝:인간의 타고난 천성을 지킴)가 있어 윗사람을 친히 여겨 그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구나.

역과 순이 저절로 나누어지니 충의있는 사람들이 선창하여 앞에 나서고자 하는 수도 있고

불을 밟고 뜨거운 곳으로 나아가 머물러 지키고자 하는 수도 있구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성을 지키면서 어떤 이는 지혜와 용기를 다하고

어떤 이는 충절을 다 바치고 어떤 이는 갑병을 수선하며

어떤 이는 군량을 공급하니 적은 버틸 수 없어 외로운 성으로 후퇴해 도주하였네.

조정에서는 이를 우려해 왕사(王師)가 서정(西征)하였네.

날씨는 춥고 비와 눈이 내리는데 백성들은 호장(壺漿)을 가지고 와서 맞는다오.

싸우랴 지키랴 여념이 없다가 마침내 확 쓸어 깨끗이 소탕하였도다.

예부터 서쪽 구석은 자주 오랑캐의 침략을 겪었지만 어찌 토적(土賊)을 생각이나 했을까?

5개월 동안 서로 버티다가 대의에 순절하니 산 자는 두드러진 상을 받았다네.

오로지 열성(列聖) 때문이니 버텨주고 길러주어라

돌을 베어 산강 가에 세우니 천년 만대에 이 새겨진 명을 보거라.

 

도광(道光)2년 임오년(순조22,1822년) 정월일



이 비는 1822(순조 22)에 건립된 승전기적비(勝戰紀蹟碑)로 유응환(兪應煥)이 비문을 지었다. (1763년(영조 39)~미상. 조선 후기 문신. 자는 덕보(德甫)이다. 본관은 기계(杞溪)이다).

1811(순조 11) 홍경래의 난을 무사히 진압한 공로에 대한 비문이다. 당시 홍경래 일당들이 쳐들어왔을 당시 목숨을 바친 가산군수(嘉山郡守) 정시(鄭蓍), 의주인(義州人) 허항(許沆) 등과 적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운 안주(安州) 전영장(前營將) 최진일(崔鎭一) 등의 공로를 기념하고자 1822(순조 22)에 건립하였다.

현재 탁본은 전해지지 않는다.

  * 용량초과로 다음카페  양천허씨 구성파종중 으로 크릭하시면 상세글을 볼수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블로그에서 일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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