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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세 휘 허응(應)
ㆍ작성자 : 허유권 ㆍ작성일 : 2019-05-06 (월) 06:46 ㆍ조회 : 213

보책기록

13세 諱 허응(應)



恭愍王20년(1371)에 生員에 及第 大司憲을 지내시고 시호는 경혜(景惠)이다.아버지는 개성윤공 허교(許喬)이시다.

국조방목에는 參知議政府使를지내시고, 夫人께서는 金海金氏이며 三司副使를 지낸 김도문(金到門)의 따님이시다.

할아버지는 侍中 忠簡公 김보(普)이며 曾祖는 三重大匡 김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이시며,外祖께서는南陽洪氏 判書 홍복기(復琪)이다. 



국가 기록물
이칭별칭  시호 경혜,

                              
유형 인물
시대 조선
출생 - 사망 미상 ~ 1411년(태종 11)
성격 문신
성별
본관양천()
대표관직(경력)

 공안부윤, , 개성유후사유후,



?∼1411(태종 11).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본관은 양천(). 아버지는 개성윤 허교()이다. 1371년(공민왕 20)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여 낭사()가 되었다.

1391년(공양왕 3) 시폐를 들어 배불론()을 주장하다가 왕의 노여움을 샀다. 그 뒤 좌상시()에 보직되어 이성계()의 신진세력에 가담하여 시폐를 혁신할 것과 전제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조선이 개국된 뒤 여러 요직을 거쳐 태종초에는 대사헌이 되어 배불정책을 강경하게 주장하였고, 부녀의 정절을 중시하여 과부의 개가()를 금지하자고 주장하였다.

1405년(태종 5) 공안부윤()으로서 사은사(使)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뒤에 개성유후사유후()에 이르러 은퇴하였다. 시호는 경혜()이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태종실록(太宗實錄)』
  • 『국조방목(國朝榜目)』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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