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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에 처한 제주 사투리 [김수종], 2019. 8. 14.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9-08-15 (목) 07:23 ㆍ조회 :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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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처한 제주 사투리

2019.08.14

“정순아, ᄒᆞᆫ저 일어나라. ᄒᆞᆫ저 일어낭 밥먹엉 몸빼 입곡 ᄀᆞᆯ갱이영 ᄎᆞᆯ리라.”
"어머니, 이 동새벽에 무사마씸?“
“어멍이영 조팟디 검질매래 ᄀᆞ치글라.”
“요건 조, 요건 검질, 요건 제완지, 지깍헌 조는 솎아불라.”
“어머니, 오늘은 구두미 바당 강 점심 먹게마씸. 몸도 ᄀᆞᆷ곡.”

위의 글은 제주 사투리 대화입니다.
국토교통부 산하 JDC(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사외보 ‘제주의 꿈’ 7월호에 소개된 ‘제주삼춘그림책’에 나오는 글입니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쓰이다가 사라진  '아래 아' 모음이 제주방언에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혹시 독자들의 컴퓨터 상황에 따라 '아래 아' 모음이 깨져나올 수가 있어서 음가를 최대한 살려 윗글을 다음과 같이 옮겨 봅니다.   독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정순아,  한저 일어나라. 한저 일어낭 밥먹엉 몸빼 입곡 골갱이 찰리라.”
"어머니, 이 동새벽에 무사마씸?“
“어멍이영 조팟디 검질매래 가치글라.”
“요건 조, 요건 검질, 요건 제완지, 지깍헌 조는 솎아불라.”
“어머니, 오늘은 구두미 바당 강 점심 먹게마씸. 몸도 감곡.”

대체로 자체 사업 홍보에 비중을 두었던 JDC가 이번 사외보에서는 ‘제주의 혼과 얼’이라는 제목으로 제주 방언을 커버스토리로 다뤄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제주 방언이 커버스토리로 올라왔다는 건 바로 제주어가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는 걸 방증합니다.
아마 자유칼럼 독자들은 위의 대화 내용을 거의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제주도에서 학교에 다니는 요즘 대학생들도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를 두드려 맞추겠지만 정확한 뜻과 상황을 모를 것이라 봅니다. 하지만 1980년쯤까지 제주도 농촌에서는 흔히 들을 수 있었던 어머니와 초등학생 딸의 대화입니다.
언어가 변하는 것을 보면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실감합니다. 세계화, 정보화,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 등으로 언어의 변화 속도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특히 제주도는 관광객이 몰려들고 이주민이 늘어나면서 방언이 변하고 있습니다. 제주말의 특징인 어미변화는 아직도 많이 살아있지만, 과거 제주 사람들의 생활 감각이 묻어나는 명사, 동사, 형용사는 급속히 ‘멸종’하고 있습니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잘 쓰지 않기 때문입니다. 특히 사투리는 가정에서 배워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 주로 살기 때문에 더욱 방언을 익힐 기회가 멀어집니다.

2011년 유네스코는 제주어를 ‘사라지는 언어’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critically endangered language)로 분류했습니다. 유네스코는 사라지는 언어를 5단계로 분류합니다.1단계는 취약한 언어, 2단계는 분명히 위기에 처한 언어, 3단계는 심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4단계는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 5단계는 소멸한 언어입니다. 유네스코 분류에 따르면 제주어는 ‘소멸한 언어’ 바로 전 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입니다.  사용 범위가 주로 조부모 세대로 한정되는 언어입니다. 시대의 변화 속도를 고려하면, 제주어는 30~40년 후엔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입니다.
언어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와 같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생성하고 소멸합니다. 2010년 유네스코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서 쓰이는 언어는 5,000종인데, 그중 위기에 처한 언어가 2,680종이라고 합니다. 21세기와 같은 초연결 사회에서는 언어가 사라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얘기하듯 시대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언어는 소멸할 것입니다. 제주 사투리도 그럴 운명에 다가서고 있습니다.
독특한 풍광 덕택인지 제주도는 내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관광지입니다. 그리고 한국의 다른 지자체에서는 보기 드물게 인구가 증가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제주의 인기가 높을수록 제주어의 소멸가능성이 높아지는 건 역설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생명력을 가진 제주 말이 적잖습니다. ‘곶자왈’은 제주 이주민들이 아주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의 화산석 위에 형성된 산림으로 생물다양성의 보고입니다. 곶은 ‘숲’이고 ‘자왈’은 덤불입니다. 펜션이나 카페 이름을 제주 사투리로 붙이는 곳이 많아졌습니다. ‘아랑졸띠’라는 카페와 ‘이디살래’라는 펜션 이름은 프랑스어를 연상하게 하는 제주 방언입니다. ‘알아두면 좋은 곳’ ‘여기 살래’라는 뜻입니다. 대부분 현대생활에 어필하는 말들입니다.

제주도에는 제주어를 연구하는 학자도 있고, 제주어 경연대회 등 제주어를 살리는 운동이 끊임없이 이어지긴 합니다. 제주도 밖에서도 제주어 보전을 국가 어문정책에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러나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쓰지 않는 말은 곧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70년 이상 제주 사투리를 쓰며 살았던 수십 명의 어른들을 모아 ‘제주삼춘그림책’을 펴낸 설문대어린이도서관과 출판사 ‘책여우’의 활동은 인상적입니다.

이 글 앞부분에 나왔던 어머니와 딸의 대화는 여름날 하루 종일 조밭에서 김을 매야 먹고살 수 있었던 옛 제주 농촌의 정서가 묻어나는 광경입니다. 어린 딸의 노동력까지 동원해서라도 시간을 아껴가며 김을 매야 하는 엄마의 심정과, 밭일보다는 바다에서 점심을 먹고 해수욕을 하고 싶어 하는 딸의 희망이 충돌하는 삶의 대화입니다.

“정순아, 어서 일어나라. 빨리 일어나 밥 먹고 몸빼 입고 호미랑 준비하라.”
“어머니, 이 이른 새벽에 왜요?
“엄마랑 조 밭에 김매러 같이 가자.”
“이건 조, 이건 잡초, 이건 제완지, 빽빽하게 자란 조는 솎아 버려라.”
“어머니, 오늘은 구두미 바다에 가서 점심 먹으면 어때요. 멱도 감고.”

* 제완지: 볏과의 한해살이 풀
* 구두미: 서귀포 섶섬 앞 보목리에 있는 작은 포구.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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