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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3-10-03 (목) 10:35 | ㆍ조회 : 4688 |
한반도와 주변에 살고있는 우리 허씨들은 중국 남부 사천성 안악(옛 지명은 보주)지방의 허씨로부터 유래되었다고 본다. 중국의 허씨들은 그 원류(原流)는 같겠지만 서로 다른 족계(族系)를 이룬다. 아래는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용어 시소러스 검색에 의해 분류검색한 고대 중국의 허씨 名人들이다.
허사(許史)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 외척인 허백(許伯)과 사고(史高)를 함께 부르는 말. 허백은 선제의 장인이고 사고는 선제의 외가(外家) 인물로, 두 사람이 당시 권력을 독점한 데서 권문귀척(權門貴戚)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허소(許巢) 요(堯) 임금 때의 고사(高士)인 허유(許由)와 소보(巢父,소부라고도 읽음)를 함께 부르는 말. 요 임금이 그들에게 천하를 주려 하였으나 거절하고 은거하였다.
허위(許魏) 명(明) 나라의 문신·학자인 허국(許國)과 위시량(魏時亮)을 함께 부르는 말. 1567년 목종(穆宗)이 등극하였을 때 반조(頒詔)의 사명을 띠고 함께 조선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허건(許虔) 후한(後漢)의 학자. 뛰어난 재능과 학문으로 동생 허소(許劭)와 함께 "평여이룡(平與二龍)"으로 일컬어졌다.
허겸(許謙) 원(元) 나라의 학자. 김이상(金履祥)의 제자로, 사서(四書) 등을 깊이 연구하여 주소(註疏)를 내었으며 "모시명물초(毛詩名物鈔)"등의 저서가 있다.
허경종(許敬宗) 당(唐) 나라 고종(高宗) 때의 문신. 간신 이의부(李義府)와 함께 황후 왕씨를 폐위시키고 측천무후(則天武后)가 황후에 책봉되는데 기여하였으며 예부상서(禮部尙書)·시중(侍中) 등을 지냈다.
허국(許國) 명(明) 나라 세종(世宗)-신종(神宗) 때의 문신·학자. 1567년 목종(穆宗)이 등극하였을 때 한림 검토(翰林檢討)로서 병과급사중(兵科給事中) 위시량(魏時亮)과 함께 반조(頒詔)의 사명을 띠고 조선에 사신으로 왔었다. 저서에 "조선일기(朝鮮日記)","문목공집(文穆公集)"등이 있다.
허백(許伯) 전한(前漢) 선제(宣帝) 때의 외척·문신. 선제 황후(皇后)의 아버지로, 태자소(太子少) 등을 지내며 거기장군(車騎將軍) 사고(史高)와 함께 권력을 독점하였다.
허소(許劭) 후한(後漢)의 학자. 매월 초하루에 향당(鄕黨)의 인물들을 평한 데서 유래한 월단평(月旦評) 고사의 장본인임. 형 허건(許虔)과 함께 평여이룡(平與二龍)으로 불림. 조조(曹操)를 평하여 "청평(淸平)의 간적(姦賊), 난세(亂世)의 영웅(英雄)"이라 한 일로 유명하다.
허승(許升) 송(宋) 나라의 학자. 주희(朱熹)를 따라 공부하였으나 끝내 선학(禪學)에 탐닉하였다.
허신(許愼) 후한(後漢)의 학자. 가규(賈逵)의 제자로, 널리 유가(儒家)의 경전에 정통하였으며, 선진(先秦)의 고서체(古書體)에 의한 원전(原典)을 중시하고 문자학에 조예가 깊어, 중국 최초의 자서(字書)인 "설문해자(說文解字)"를 저술하였다.
허원(許遠) 당(唐) 나라 현종(玄宗) 때의 충신으로, 장순(張巡)·안고경(顔杲卿) 등과 함께 안녹산(安祿山)의 난을 진압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
허유(許由) 하(夏) 나라의 은자. 청렴하고 덕이 높아 요(堯) 임금이 천하를 양보하려 하자 거절하고 기산(箕山)에 숨었으며, 또 그를 불러 구주(九州)의 장(長)으로 삼으려 하자 영수(潁水) 물가에 가서 귀를 씻었다고 전한다.
허정(許靖) 후한(後漢)-삼국시대 촉(蜀) 나라의 문신·학자. 허소(許劭)의 사촌형으로, 매월 첫날 허소의 집에서 향당(鄕黨)의 인물을 평가한 데서 "월단평(月旦評)"의 고사가 유래되었다.
허형(許衡) 송(宋) 말-원(元) 세조(世祖) 때의 문신·학자. 이학(理學)에 밝았으며, 세조 때 역법을 수정하여 "수시력(授時歷)"을 완성함.집현전 태학사(集賢殿太學士) 등을 지내며 평생 교육에 힘썼다.
허혼(許渾) 당(唐) 나라의 문신·문인. 영주 자사(郢州刺史) 등을 지냈으나 몸이 병약하여 윤주(潤州)의 정묘교(丁卯橋) 촌사로 낙향함. 율시(律詩)에 뛰어나고, 시국을 우려하는 내용의 시를 많이 지었다.
비고: 소부(巢父)의 이야기,명심보감의 허경종 詩,등등 중국의 고사에 많은 허씨 인물들이 있다. 허경종(許敬宗)의 시는 명심보감에 인용되었다. 또한 汝南之月評(여남지월평) 이란 말의 장본인은 허소(許劭)이다. 허소등 여남사람들이 매월初가 되면 인물을 논핵하여 평가하기를 좋아했던 일에서 유래된 말인데 월단평(月旦評)이라고도 한다. 위 내용은 고성참의공종회카페에서 轉載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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