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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 병조참판 휘 허용(容) 부인 풍양조씨,휘 허쟁(崝)의墓
ㆍ작성자 : 허유권 ㆍ작성일 : 2019-02-09 (토) 11:48 ㆍ조회 : 431
2019년 2월 7일 목요일 오전10시30분 광주시 초월읍 대쌍령리 에서 광주문화원이 주체하는 정충묘(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외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민영 장군,안동영장 선세강,죽주산성 성주 이의배 의 제례식이 봉행 되었다.시간이 않되어서 참석을 못하였지만 충장공파 허재무감사께서 제례식을 마치고 몇장의 사진을 보내왔다.허재무 감사는,허흥무 총무,조카 한분을 모시고 그동안 보책에만 있는 허완장군의 큰 형님이신 휘 허용의 묘역이 광주 퇴촌 우산동에 계시다는 기록만 보고 소산(蘇山)을 맹목적으로 찾아가 동네에 오래 거주하신 어르신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묘역을 찾은 결과 참혹한 현장이 발견 되었다 한다. 보내온 사진을 보아도 가슴이 아플 정도였으니 현장을 목격한 종인들께서는 오죽하여으랴..묘역의 문인석은 물론 묘비는 깨지고 여기저기 흐트러진 모습이 참담하다, 


동지 의금부 허공 용(容) 之 묘.부인 풍양조씨 묘표석..... 조각이 나있다.

 
비문은 부서지고 밑부분만 있다.


조씨 할머님의 묘비 같다.부군 자(字) 덕부(德符) 양천  려 개국공신  평?조암(趙巖) 문헌에는 왕건은 "趙孟"으로 사성 하였다고 기록 되있다.가정 임자 (1552년)생인지 아니면 비 세운날짜? 아쉽다.

휘 허쟁의 묘표...나무와 함께 묻히었다.

휘 허쟁(崝)의 묘표 저자 허목(穆)
휘 허용(容) 長子 휘 허쟁()의 묘표. 미수 휘 허목(穆)할아버지가  묘지명을 찬 하신것을 보면 공의 휘는 쟁(崝)이고 자는 탁보(卓甫)이며.성은 허씨이고 본관은 양천이다.할아버지 허기(芑)는 증 호조 참판이고 아버지 허용(容)은 贈 병조참판 이며 어머니는 풍양조씨로 우리 태조의 공신 조암(巖)의 후손이다 하셨다.'''''''아래글 연속

 
長子 휘 허쟁(崝)과 사위 장계선의 아들 극인(克仁) ,극의, 극례, 극지와 함께 경인 윤달에 묘비를 세운것 같다. ....극인(克仁)의 휘자 만 보인다.

 휘 허쟁께서는 미수할아버지 묘지명을 보니 공은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하며 선조39년(1606) 증광시에 급제하고 선전관이 되고 그뒤 8년에 절충장군에 승진하였다.또3년에 가을파진 첨절제사로 나가서 능력을 인정 받아 조방장으로 승진하여 함흥에 머물다가 1년만에 할머니의 상을 당하여 초상을 치르러 돌아왔다 한다.임술년(1622년광해군14)에 위장으로 되었다가 첨지중추부사로 바뀌었다 .인조원년에 결성 병마도위가 되었다.정묘년 1627년 인조5년 금군이 침입 때에는 임금을 호종하여 강화도에 가서 위장으로 있다가 부산진의 첨절제사로 나갔다.갑술년1634년인조12에 안동도호부사가 되었다.병자년1636,인조14년에 내승 겸 선전관이 되었는데.이해 겨울에 호란이 있어 이듬해 봄에 거가 가 남한산성까지 파천하였다가 돌아와 호종한 문무 백관들에 상을 내림에 따라공도 관례대로 동지중추부사로 승진 하였다.뒤이어 낙안군수 장흥도호부사를 지냈다.신사1641 인조19년에 어머니 조 부인이 몰하였는데,삼년 상을 마치고도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탄식 하기를 "노모가 이미 세상을 마치었는데 다시 누구를 위하여 봉양을 구하겠는가?전려에서 늙는것도 족하다"하였다.제사를 공손이 받들고 친족과 화목을 도모하며 자제들을 거느리고 아무 일 없이 책이나 즐겨 읽었는데,고인들의 격언을 볼 적마다 반드시 벽에 써 붙여 놓고 성찰 하였다.

임진년1652년 효종3에 80세의 일기로 자헌대부의 수직을 제수받고 임인 1662 현종3년에 90세로 정헌대부의 수직을 받았으며 그이듬해 정월17일에 세상을 마치시었다.정부인 채씨은 본관이 인천이고 추밀원사 채보문의 후손이다.공보다23년 먼저 생을 마감하였는데 묘는 광주 소산 공과 같은터에 서향으로 안장 되어있다. 아들은 허집,허숙,허육이고 사위는 생원 이민급이다.측실 자녀 사람으로 아들은 무과 허단,허질이고 사위는 권관 과 안호이다 내외 자손이 40인이다.
......미수할아버지 묘지명에서

함께 싸우신 선조  쌍령전투 참가자
동주사공파 漢城尹公 호(灝) 孫 監察公 휘 겸(謙) 五子 縣監公 휘 작(作) 縣孫派.

23세 허응상(應祥) .一作 군서(君瑞) 생년미상 父 參奉 허문(文). 武科 丙子與兵使 민영(閔泳) 赴雙領戰後邦訓僉又授 남해현령 並享 忠敏祠 配 一善金氏 父 김희우(希祐) 配 聖山李氏  父 部將 이귀연(貴連) 墓 部西 水多山 上松 合窆. 弟 허응신(應信) 墓 上同 配 玄風郭氏 父 곽춘생(春生)

 향토문화전자대전   

허응상


[ ]

분야 역사/전통 시대,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시대 조선/조선 후기
출처디지털구미문화대전-허응상                               

정의

조선 후기 구미 출신의 무신.

활동사항

양민의 신분으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경상우도의 병마절도사 민영()의 막하로 종군하였다. 척후장()이 되어 광주() 쌍령의 경안교에서 청병()을 만나 7~8명을 죽이고, 이튿날 적의 대규모 공격에 대항하여 군사를 이끌고 싸워 격퇴시켜 허장군()이라는 칭송을 들었다. 이 공으로 훈련원첨정을 지내고 남해현령이 되었다.


참고문헌

  • 정규삼, 『선산읍지』(시은서실, 1926)

출처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제공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러듯 훌륭하신분 들을 후손들이  늦게나마 발견 하였으니 그나마 남은 비문 조각들을 없어지기전에 하루 빨리 수집하여  선조님들의 묘역을 복구를 하였으면 한다. 후손으로 양천인으로서 부끄럽고 죄송하는 마음 금하면서.....끝으로 추운 날씨도 불구하고 묘역을 찾으시노라 고생하신 충장공파 허재무감사님 허흥무 총무님께 감사드립니다.


 2019년 기해년 2월에 구봉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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