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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암공파 36세 허찬국 충남대 교수의 칼럼, 2019. 6. 19.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9-06-19 (수) 14:16 ㆍ조회 : 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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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본 신록의 지리산

2019.06.19

5월에 지리산을 두 번 올랐습니다. 월초 첫 산행에서 본 청명한 신록(新綠) 천지, 짙은 구상나무 향(香), 그리고 파란 하늘의 매력에 빠져 두 주 후 다시 찾았습니다. 또 첫 산행을 서둘러 마무리해서 남은 아쉬움이 컸던 때문이지요. 야외 활동을 즐기나 높은 산을 오르는 일은 몇 년에 한 번 정도였기 때문에 이번 산행은 특별했습니다. 초봄에 항암 치료 중인 고향 친구를 포함해 몇 명이 어디 한적한 지리산 둘레길 마을을 찾아 조용히 음풍농월하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이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 유명한 산을 한 번도 못 가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단독 산행을 마음먹고 안내 책자, 인터넷 자료를 참고해서 대략 계획을 세웠습니다.

두 번 다 지리산 북쪽 함양군에 위치한 백무동에서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1차 때 경로는 백무동-장터목-천왕봉(1915m)-중산리, 2차에는 더 긴 코스인 백무동-세석대피소-천왕봉-유평리(대원사)였습니다. 대전에서 버스 편으로 함양을 거쳐 백무동으로 이동한 후 첫 산행 때는 백무동에서, 그리고 2차 때는 세석대피소에서 일박했습니다. 꽤 깊은 계곡을 끼고 있는 백무동에서 아침 일찍 민박집을 나서 장터목으로 향했습니다. 초반에는 계곡의 물소리로 길벗을 삼는 비교적 완만한 경사의 돌길이 이어졌습니다. 백무동 계곡 일대를 연한 초록색이 뒤덮은 풍경은 압도적이었는데 연초록 잔치는 하산할 때까지 끊임이 없었습니다.

장터목 방향 길이 물소리가 멀어지기 시작하며 더 급해졌지만 오르막이 급한 장터목 직전까지 편한 길도 더러 있었습니다. 고도 600m에 못 미치는 백무동에서 1720m에 있는 장터목을 가야 하니 경사진 길이 당연하지요. 하지만 2차 산행 때 장터목보다 고도가 낮은 세석평전(1540m)에 오르고 나서야 경사진 길이 좀 흩어져 있는 것이 끝부분에 집중된 것보다 더 수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산행 때 천왕봉 근처에서 신고 있던 막 신던 낡은 등산화 밑창이 떨어져 허둥지둥 중산리 길로 하산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장비를 좀 더 제대로 갖추고 두 번째 산행에 나섰습니다. 버스가 일렬로 새끼들을 이끌고 길을 건너는 꿩 일행을 위해 속도를 늦추는 미소 짓게 하는 장면도 보았습니다. 백무동에서 세석평전 길은 거의 끝부분까지 맑은 물이 콸콸 쏟아지는 한신계곡을 가운데 두고 이어졌습니다. 긴 세월 물의 힘으로 다듬어진 바위 계곡 안의 수많은 작은 폭포와 소(沼)들, 그리고 한 번씩 길이 계곡을 건너는 다리 위에서 파란 하늘, 신록, 능선, 계곡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보며 자연스레 감탄이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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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계곡>                                 <정상서 본 북쪽 전경>                               <1차 등정 때 과로사한 등산화>

세석평전 전 1km쯤부터 길이 상당히 가팔라지며 체력이 방전되어 지리산의 거친 면을 경험했습니다. 초행이라 대피소에 일찍 도착하려는 생각에 쉬지 않고 빠르게 움직였던 탓에 더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계단 중간쯤에서는 머릿속이 텅 비는 무아지경으로 한참 서있다 다음 걸음을 어렵게 옮겼습니다. 산을 많이 다닌 이들은 웃을 일이겠지만 참 희한한 경험이었습니다.

넓고 완만한 세석평전에 위치한 세석대피소는 탁 트인 경관에 규모도 넉넉해 여유로웠습니다. 우선 생오이 하나로 기진한 몸을 추스르고 있으려니 등산객이 늘며 240명이 정원인 대피소를 쉽게 채울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중 눈길을 끄는 일행은 6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20명 가까운 장년 팀과 백 명이 넘는 중학교 학생과 선생님들이었습니다. 오르는 길에 학생들을 지나쳤는데, 그때는 힘들다고 투덜대던 이 친구들이 대피소에 도착해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죠. 삼삼오오 뛰어다니고 대피소의 재래식 화장실을 신기해하며 휴지로 코를 막고 구경하고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의외로 어린 학생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세석대피소를 나서 도착한 장터목에서도 뛰어다니며 노는 한 무리를 보았고, 첫 산행 하산 때 중산리 방면 가파른 계단 길에서도 정상을 향하는 두 개의 다른 학교 학생들을 보았습니다. 쉽지 않은 지리산을 어린 학생들의 극기 연마장으로 삼는 것은 천왕봉 정상비에 새겨진 ‘한국인의 기상(氣像) 여기서 발원하다’는 내용과 관련이 있는 듯합니다.

첫 산행 때 정오쯤 천왕봉에 올랐는데 정상비 주변의 넓지 않은 터를 단체 등산객들이 차지하다시피해서 흔한 인증샷 하나 제대로 못 찍고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아직도 이른 시각이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아 여유 있게 사방의 풍경을 감상했습니다. 처음에 비해 시계가 좀 흐렸지만 옅은 초록색으로 뒤덮여 여러 갈레로 넓게 뻗어 내려간 산등성이들은 정말 장관이었습니다.

산행 며칠 후 필자가 천왕봉에 서 있는 사진을 단톡방에서 본 한학자(漢學者) 지인이 조선 중기 학자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1585∼1664)가 지은 천왕봉 시를 알려주었습니다. “티끌 같은 세상 밖으로 벗어나 / 천왕봉 정상에 올라왔네 / 뭇 산은 나지막한 흙덩이로 보이고 / 사방의 강들은 아스라이 술잔 같구나 / (하략. 註 참조)”. 그런데 시구 중 “흙덩어리”를 보니 간송이 천왕봉을 왔다면 봄이 아니었고, “사방의 강들은”을 보니 곳곳에 계곡은 있으나 강은 보이지 않기에 간송이 천왕봉을 왔던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벼슬을 마다하고 고향 함안에 살았던 병약했던 간송이 지리산의 천왕봉에 오른 것을 상상하며 호방한 감흥을 표현한 와유시(臥遊詩)라는 한학자의 설명에 의문이 풀렸습니다. 함안은 진주 동쪽에 위치해 있어 지리산이 좀 멀리 보이기 때문에 산 주변 산천의 모습을 잘 몰랐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호른 연주가 특히 인상적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곡 4번 알프스’, 매우 극적인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 하룻밤’과 같이 산과 연관된 규모가 큰 곡들이 있음에도 신록의 지리산은 저에게 바이올린 음악을 연상시켰습니다. 두 번째 지리산을 향하는 버스에서 올해 초 서울에서 실황 공연을 보았던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연주하는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의 바이올린 독주곡 파르티타 2번을 여러 번 들었습니다. 10대 초 고전음악에 끌리기 시작하며 바이올린 곡들을 무척 좋아했지만 청년기 이후 첼로 음악에 더 심취해 있어서 바이올린 음악을 찾아 듣기는 오랜만이었습니다. 5월의 연초록 지리산은 때론 날카롭게 아름답거나 슬프지만, 여리고 섬세함이 이어지는 바이올린 음악의 감흥을 깨운 모양입니다. 처음 접하는 웅장한 산이 여린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벌써 가을, 겨울의 지리산, 못 가 본 전라북도 쪽 지리산도 보고 싶어집니다.

5월 산행 때 조우했던 학생들 일행의 후미에서는 어김없이 등산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일행과 인솔 교사도 보았습니다. 그들이 중간에 돌아섰던 일에 오래 마음 상해하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약 50년쯤 전 중학생이었던 필자가 학교 연례행사로 한라산에 올랐다가 이튿날 비 오는 하산 길에 잠시 딴전 피우다 일행에 뒤처져 고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아이들이 산은 항상 그곳에 변함없이 있을 것이기에 언젠가 다시 찾으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고, 선조들이 꿈꾸던 기상을 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합니다.

註,
천왕봉에 오른 것처럼 짓다〔擬登天王峯〕 (의등천왕봉)

티끌 같은 세상 밖으로 벗어나 / 脫出塵埃外 (탈출진애외)
천왕봉 정상에 올라왔네 / 天王頂上來 (천왕정상래)
뭇 산들은 나지막한 흙덩이처럼 보이고 / 千山低視塊 (천산저시괴)
사방의 강들은 아스라이 술잔처럼 보이네 / 四瀆眇看杯 (사독묘간배)
비로소 몸이 가장 높은 곳에 있음을 깨닫고 / 始覺身居最 (시각신거최)
바야흐로 시야를 넓게 하였네 / 方令眼界恢 (방령안계회)
만약 바람을 탈 수 있다면 / 泠風如可馭 (냉풍여가어)
곧장 봉래산에 이르고 싶네 / 直欲到蓬萊 (직욕도봉래)

간송(澗松) 조임도(趙任道)의 간송집(澗松集)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자유칼럼의 글은 어디에도 발표되지 않은 필자의 창작물입니다.
자유칼럼을 필자와 자유칼럼그룹의 동의 없이 매체에 전재하거나, 영리적 목적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필자소개

허찬국

1989년 미국에서 경제학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연지준과 국내 민간경제연구소에서 각각 십년 넘게 근무했고, 2010년부터 2019년 초까지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로 재직. 다양한 국내외 경제 현상을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주된 관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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