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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꽃 찾아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박대문], 2019. 7. 25.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9-07-26 (금) 05:30 ㆍ조회 :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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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꽃 찾아 한계령에서 대청봉으로

2019.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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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꽃 (미나리아재비과) Anemone narcissiflora L.

한여름 복더위에 설악산을 오릅니다. 한계령에서 서북능선을 타고 대청봉의 바람꽃을 만나러 가는 꽃산행 길입니다. 무더위가 한창인 7월 중순임에도 이른 아침의 한계령은 싸늘한 기운이 감돕니다. 냉골마루를 뜻하는 한계령(寒溪嶺)이니 그럴 만도 하지만 한 서린 사연도 없지 않습니다. 남한에서는 설악산을 가야만이 ‘바람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덧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바람꽃을 만나려고 한계령을 오르는 길이기에 한계령에 얽힌 과거사를 되돌아봅니다.

한계령을 오르는 입구의 108계단은 가슴 아프고 애틋한 사연이 있습니다. 산세가 험악한 한계령에 육군 제12사단 공병대가 양양에서 인제까지 1971년부터 군사 도로를 개설, 정비하여 1973년에 완공하였습니다. 이 공사 중 희생된 군 장병 108명의 추모와 명복을 빌기 위해 한계령 위령비를 세우고 위령비를 오르는 108계단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오늘의 한계령 등산로 입구가 바로 그 계단입니다. 계단 끝에는 설악루(雪嶽樓)를 세웠습니다. 한계령 위령비 뒷면에는 희생 장병 이름과 함께 당시 공사를 관장하고 준공했던 제3군 군단장 김재규 중장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군단장 이름만 지워진 채 희생 장병 이름이 새겨져 있어 세상사가 무상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계단 하나하나가 이때 희생된 군 장병의 목숨을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가파른 계단이 숨차고 힘들다기보다는 참으로 숙연한 마음이 이는 계단입니다.

한계령 계단을 지나 가파른 산길을 계속 오르니 양희은의 한계령 노랫말도 새삼스럽습니다.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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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 대청봉 기슭에 넘실대는 하얀 꽃물결, 덧없는 사랑인가?

한겨울 추위에 실낱 같은 햇살과 봄빛 그려 이 땅에 맨 처음 봄을 알리는 봄의 전령이 바람꽃 종류입니다. 손톱만 한 작은 키에 큼직한 꽃을 매달고 눈도 채 녹기 전 가냘픈 봄바람에 하염없이 흔들리는 애잔한 꽃 가족입니다. 너도바람꽃, 변산바람꽃 같은 너도바람꽃 속(屬)(Eranthis)이나 홀아비바람꽃, 꿩의바람꽃 등 바람꽃 속(屬)(Anemone) 모두가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름 앞에 아무 형용사가 없는 바람꽃(Anemone narcissiflora L.)만이 유일하게 한 해의 중간인 한여름에 꽃을 피워 바람꽃 가족 개화 시기의 대미(大尾)를 장엄하게 마무리 짓습니다. 이 바람꽃을 만나려면 한여름 무더위에 냉골마루 한계령(寒溪嶺)의 숙연하고 비장한 108계단을 시작으로 길고 지루한 서북능선을 따라 대청봉에 올라야만 합니다.

길고 지루한 설악산 서북능선 길, 안개 속에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낸 용아장성과 공룡능선을 바라보며 큰 산의 신비감에 젖고 산행길에 곱게 맞아주는 7월의 야생화와 눈 맞춤 하며 오르고 또 오릅니다. 마침내 대청봉에 오르니 하얀 꽃물결이 너울거리며 반깁니다. 오늘 산행의 주인공, 바람꽃이 한창이었습니다. 매번 시기를 못 맞춰 개화 절정기를 놓쳤는데 군락이 만개한 절정기의 바람꽃을 본 것은 참으로 감동이었습니다.

미나리아재비과 바람꽃 속(屬)(Anemone)의 ‘바람꽃’은 바람꽃 집안의 대표식물입니다. 하지만 다른 바람꽃 가족과는 여러모로 다릅니다. 다른 바람꽃 종류와 다르게 개화기가 이른 봄이 아니라 한여름입니다. 자라는 곳도 숲속 그늘이 아닙니다. 바람이나 바위 때문에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는 바위틈이나 고산지대 초원 군락에 자랍니다. 크기와 모습도 전혀 다릅니다. 굵은 뿌리줄기에서 높이 15∼30cm로 자라 우산살이 퍼지듯 5~6개 정도의 크고 탐스러운 하얀 꽃이 꽃다발처럼 피어납니다. 바람꽃 가족의 다른 종(種)이 모두, 그리스 신화 속 전설처럼 바람의 신 제피로스(Zephyrus)의 따뜻한 훈김을 애타게 기다리는 플로라(Flora)의 시녀 아네모네(Anemone)를 연상케 합니다. 차가운 이른 봄에 가냘픈 한 줄기 봄바람과 햇살을 애타게 기다리는 여리고 작고 애잔한 아네모네 속(屬)(Anemone)의 바람꽃 가족, 하지만 바람꽃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햇볕 따가운 한여름에 높고 시원하고 탁 트인 곳에서 바람과 구름을 벗 삼아 고고하게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세속의 잡사를 잊고 고상하고 순결하게 초연한 생을 살아가는 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꽃말 ‘덧없는 사랑’처럼 허무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긴긴 기다림에 지쳐 한여름 뜨거운 바람에 화산 터지듯 일순에 피워 올린 꽃잎 같은 하얀 꽃받침이 뚝뚝 지고 나면 설악의 바람 따라 구름처럼 사라
지는 꽃물결입니다.

스쳐 가는 것이 인연이라면 스며 오는 것은 사랑이라 하겠습니다. 위령비에 새겨진 이름은 지워도 그 사실은 남습니다. 대청봉 기슭에 무리 지어 핀 하얀 바람꽃을 스쳐 왔지만, 이번에 만난 인연은 그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해가 갈수록 높은 산행이 힘들어지니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려나? 대청봉 바람꽃과의 작별에 가슴이 시립니다. 이곳에 와서 다시 만날 때까지 항상 내 마음에 스며 있어 바람꽃 사랑은 지속될 것입니다. 내 다시 또 만날 수 있을까? 튼실하게 잘 자라 하얀 꽃물결이 계속 일었으면 하는 바람과 또다시 대청봉의 바람꽃을 찾아 한계령을 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하산길로 접어들었습니다.

(2019. 7. 13. 설악산 대청봉에서)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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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박대문

환경부에서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과장, 국장, 청와대 환경비서관을 역임했다. 우리꽃 자생지 탐사와 사진 촬영을 취미로 삼고 있으며, 시집 『꽃벌판 저 너머로』, 『꽃 사진 한 장』, 『꽃 따라 구름 따라』,『꽃사랑, 혼이 흔들리는 만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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