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려오는 하얀 파도가 외돌개에 부딪혀 물거품이 됩니다. 흩날리며 사라지는 물거품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해도 맥문아재비는 하얀 꽃을 피웠습니다.
머나먼 남쪽 바다 수평선 너머로부터 거침없이 달려오던 하얀 너울이 외로움의 화신(化身)인 양 홀로 서 있는 외돌개 앞에서 물거품으로 부서집니다.
혼자라서 외로웠던 외돌개, 외롭게 달려온 그리움의 덩어리, 서로가 기다렸다는 듯 부둥켜안더니만 눈물보다 더 진한 하얀 물방울을 날립니다. 물거품은 사라지고 무심한 바윗돌만 남습니다.
끊임없이 밀려오고 쉼 없이 부딪쳐 더 이상 갈 곳 잃어 사라지는 하얀 너울, 봄이면 꽃 피워 가을이면 씨앗 남기고 찬바람 흰 눈 속에 사라지는 들꽃을 닮았습니다.
매년 피고 지는 맥문아재비의 하얀 꽃송이, 긴 세월 반복되는 갯바위의 하얀 물보라처럼 올해도 맑고 하얀 꽃 무더기를 피워 올립니다. 지칠 줄도, 꺾일 줄도 모르는 끈질긴 피고 짐이 끊임없이 부서지고 또 밀려오는 파도를 닮았습니다.
밀려왔다 부서지는 하얀 물거품,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하얀 꽃송이, 무심한 외돌개도 가슴이 아파 세월 따라 시름시름 닳아갑니다. 맥문아재비의 하얀 꽃 무더기도 시든 듯 지는 듯 사그라져갑니다.
왕맥문동이라고도 하는 맥문아재비는 제주도와 남해안 섬, 바닷가 그늘에 자생하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하얀 꽃이 지고 나면 연한 청색의 열매가 둥근 구슬처럼 달리고 겨울이면 짙은 청색으로 변하고 보석처럼 광택이 납니다. 이파리, 꽃 모두가 맥문동에 비해서 큽니다. 맥문동의 삼촌뻘 되는 꽃이라서 맥문아재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