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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의 능선 전투'와 억장 무너진 현충일 [신현덕], 2019. 6. 14.
ㆍ작성자 : 허장호 ㆍ작성일 : 2019-06-14 (금) 07:56 ㆍ조회 : 251

 ‘피의 능선 전투’와 억장 무너진 현충일

2019.06.14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투가 멈춘 지 66년입니다. 오늘까지도 우리는 정전, 휴전, 종전의 개념조차도 정리를 못한 채, 안보 갈등과 대립 충돌 분열을 계속합니다. 저는 지난 40여 년 간을, 군 복무 중 전사(戰史)를 정리하면서 본 많은 자료들 때문에 드러내놓지 못하고 속앓이를 합니다.

그중 이승만 대통령이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에 참석, 유가족을 위로하는 흑백사진을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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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이 계속되는 중에 우리나라 현충일의 모태가 된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 합동 위령제’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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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이 상주가 되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유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1952년 전선이 고착되어, 지루하게 소모전이 진행될 때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이 가슴에 상장(喪章)을 달았습니다. 대통령이 유가족과 함께 상주(喪主)가 되었습니다. 굴건제복을 안 했고, 대나무 막대기를 짚지 않았을 뿐입니다. 소복을 입은 여성이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앙다문 채 먼 곳을 응시하고, 한 여성은 슬픔을 참느라 고개를 숙이고, 다른 여성은 착잡한 표정으로 금방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어린 아이를 안고 있습니다. 남편을 나라에 바친 청상(靑孀)이거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일 겁니다. 이들은 이미 고인이 되었거나, 아주 젊었더라도 지금은 90전후, 품에 안긴 아이는 전쟁 중에 살아남았다면 70을 넘겼을 겁니다. 국군 최고 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상주로서 동병상련의 심정에서 유가족을 위무하는 모습에 분위기가 숙연합니다. 대통령이 (상주의 죄지은 마음으로)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장병들의 충성을 앞장서서 기리고 있습니다.

또 한 장은 위령제보다 한 해 전인 1951년 8월 강원도 양구군 북방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전투 때 찍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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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중 8월 한여름의 피의능선. 모든 가지가 포화에 찢기고, 부러져 겨울처럼 앙상하다. 전쟁 후 높이까지 낮아졌다고 한다.

종군기자도 아니면서 군대를 따라 진격・후퇴를 함께한 신의균 씨가 찍었습니다. 여기에 피의 능선 전투에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넘긴 당시 보병 제5 사단 제36 연대장 황엽 대령(후에 보병 제5 사단장을 역임, 소장 예편)의 얼굴도 겹쳐 떠오릅니다.

피의 능선 전투는 아군-미군 제 2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보병 제5 사단 36연대-이 싸워 이겼습니다. 승전에도 불구하고 엄청 많은 이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미군 신문 성조지는 이를 ‘피의 능선 전투’라 보도했습니다. 두 차례의 전투는 상상을 초월할 만큼 치열했습니다. 아군은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 북방과 도솔산을 연결하는 선(당시는 칸사스 선이라 칭했음)에서 방어하고 있었습니다. 북한군과 중공군이 이보다 북쪽에서 아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 ‘피의 능선’입니다. 적군은 이 지역을 아군에게 빼앗기면 북쪽으로 멀리 밀려나야 하므로 방어에 사력을 다했습니다.

보병 제36 연대가 미 제2 사단에 배속됐습니다. 적으로부터 피의 능선을 탈취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미 육·해·공군의 막강한 화력을 지원받았습니다. 어마어마한 화력 집중에도 불구하고 북한군의 땅속 진지는 끄덕도 안 했습니다. 육탄 공격 이외의 방법이 없었습니다. 국군이 북한군의 총격에, 총검에 죽어갔습니다. 고지를 뺐고 빼앗기고, 적을 죽이고, 아군도 죽었습니다. 6일 간의 전투 끝에 피의 능선을 점령했습니다. 하지만 적의 역습으로 곧바로 밀려났지요. 닷새 뒤 아군이 재공격에 나서 나흘 만에 재탈환했습니다. 그 이후 아군이 계속 점령, 오늘에 이릅니다. 이 전투에서 36연대에서만도 158명이 사망했고, 224명이 실종 되었으며, 1,071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연대가 괴멸 수준이었습니다.

김일성은 얼마 뒤 피의 능선을 빼앗긴 책임을 물어 사령관 김웅과 군단장 방호산을 숙청했습니다. 그만큼 피의 능선 손실이 북한군에게는 아팠습니다.

1977년 가을부터 피의 능선 전투를 지휘했던 연대장 황엽 씨를 종로 5가 전매협동조합 사무실에서 자주 만났습니다. 만날 때마다 중국집에서 잡탕밥을 시켜 먹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피의 능선에서 꼬박 삼일을 굶으며 싸웠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습니다. 퍼붓는 포화 때문에 식사를 능선까지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가 들려준 처절했던 피의능선 전투입니다.(보병 제5 사단 부대역사에 실렸음)
피의 능선은 적이 2개월에 걸쳐 요새화한 다음, 상자로 된 대인지뢰(註 흔히 목함 지뢰라고 부름)를 2,000발 이상 매설하고 북괴 제2, 제5 군단의 포병지원을 받고 있었다.
이때 연대는 미 전차 대대를 배속받았으며(중략)… 미 포병부대의 치열한 사격에도 적의 거점이 파괴되지 않아서 병사들의 육탄공격에 의존하여야 했다. 이 전투에서 1,000명 넘게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이는 수목이 거의 없어질 정도로 가한 아군의 치열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폭발하지 않은 적의 지뢰와 근접전으로 인한 손실이었다. 골짜기는 피바다를 이룰 정도의 치열한 전투가 계속되었다.(생략)

피의 능선 전투 전적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강원도 양구군의 분지가 펀치볼(전적비에는 판치볼로 되어 있음)을 닮았다고 하여 펀치볼로 널리 알려진 곳입니다. 당시 서울에서 강원도 양구군 동면 월운리까지 가는 길은 험했습니다. 전투 전적비를 찾는 일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겨울 난방도 없던 시외버스를 타고 가며 강아지 떨 듯 덜덜 떨었습니다. 펀치볼 전투 전적비 비문의 일부입니다.
인류의 평화와 자유의 반역자 북한 괴뢰 제2 군단이 평화롭던 이 강산을 피로써 물들이게 되고 조국의 가쁜 숨이 경각을 다툴 때에 임들의 몸이 방패가 되어 우리 민족을 살렸고 임들이 흘리신 피는 이 나라를 건졌도다.
여기 임들의 빛나는 충성과 영웅 무쌍한 무훈을 천추만대에 전하고자 이 돌을 세우나니 비록 이 비석은 모래알이 될지라도 임들의 그 위대한 공훈은 해와 달로 더불어 길이 빛나리라.

지난 현충일 서울 현충원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습니다. 피의능선에서 죽어간 이들의 형제자매, 후손들과 제1차 육해공군 전몰장병합동 위령제 사진 속의 어린 아이가 노인이 되어 참석하지는 않았나 모르겠습니다. 이날 6・25 때 북한에서 공을 세워 북한 최고 훈장을 받은 이가 광복군이었고 “국군창설의 뿌리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는 6・25 전쟁 때 북한을 위해 공을 세워 김일성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의 훈장에는 북한군이 죽인 국군과 우리 부모형제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피가 묻어 있습니다. 또 대한민국 영토를 유린한, 용서 못 할 짓도 그의 공적(功績)이 되었습니다. 6・25 때 북한군에게 부모를 잃은 고아와 자식을 나라에 바친 부모와 남은 형제들의 피멍 든 가슴에서부터 원망과 분노와 한의 눈물이 흘러내렸을 겁니다. 재향군인회도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북한군이 핵무기로 무장한 채 대한민국을 위협하는, 6·25 이후 닥친 누란지위(累卵之危)의 순간입니다. 전몰장병합동위령제 사진 속 “피 흘리신 호국의 영령 앞에 다시 한 번 맹서하자”는 구호가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보여 줍니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는 대한민국 하나뿐입니다.

* 이 칼럼은 필자 개인의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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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소개

신현덕

서울대학교, 서독 Georg-August-Universitaet, 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몽골 국립아카데미에서 수업. 몽골에서 한국인 최초로 박사학위 방어. 국민일보 국제문제대기자,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교수, 경인방송 사장 역임. 현재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서독은 독일보다 더 크다, 아내를 빌려 주는 나라, 몽골 풍속기, 몽골, 가장 간편한 글쓰기 등의 저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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