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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작성일 : 2016-09-02 (금) 14:40 | ㆍ조회 : 324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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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수(眉叟) 허목(穆, 1595~1682)은 대학자로서 과거를 보지 않고 정승(우의정)에 오른 인물이며, 또 청빈한 삶이 세상에 알려져 노년에는 숙종대왕으로부터 집을 하사받은 양천 허문의 자랑스러운 명조 중 한 분이다. 미수공은 아버님의 관직 생활로 출생지는 한양의 창선방(지금의 서울대학병원 인근)이나 경기도 연천에 선대부터 살아온 집이 있어 벼슬을 하직한 84세 이후는 연천에서 생활하시다 돌아가셨다. 미수공은 고문(古文)을 좋아해 서체 또한 전서체를 즐겨 썻는데 미수공의 전서체는 당대부터 동방 제1인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미수공의 전서체는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접해볼 수 있는데, 삼척의 척주동해비(강원도 유형문화제 제38호), 안동 하회마을 유성룡 종가댁의 편액 ‘충효당(忠孝堂)’, 학봉 김성일 종가댁의 편액 ‘광풍제월(光風霽月)’, 귀봉 김수일이 세운 정자의 편액 ‘백운정(白雲亭)’ 등 공(公)의 독특한 전서제가 전국 각지에 고이 간직되어 내려오고 있다. 미수공은 영의정을 지낸 오리 이원익(李元翼) 대감의 손녀 사위이자 문장가 백호 임제(林悌)의 외손이다. 조선조 500년 동안 임금으로부터 집을 하사받은 분은 세종대왕때 영의정을 지낸 방촌 황희(黃喜) 정승, 미수공의 처조부로 영의정을 지낸 오리 이원익(李元翼) 정승, 그리고 미수공 이렇게 세 분인데 미수공은 숙종대왕으로부터 하사받은 집의 이름을 ‘수고은거(壽考恩居)’라 했는데, 사람들은 이 집을 은거당(恩居堂)이라 불렀다.
미수공은 퇴계의 학맥을 이어 받았는데, 퇴계 학문은 퇴계 이황으로부터 한강 정구-미수 허목-성호 이익-번암 체재공-다산 정약용 등으로 이어진다. 한편 미수공의 학문은 근기 실학의 가교 역활을 하기도 했다. 미수공은 고려 개국에 공을 세운 고려개국 삼한벽상공신이며 양천허씨의 시조인 허선문(宣文)으로부터 22세 손이며 미수공의 묘역은 ‘미수 허목 묘역’으로 현재 경기도 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종회 사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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