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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세 징와공(澄窩公) 諱 허굉(硡).
ㆍ작성자 : 허유권 ㆍ작성일 : 2019-03-20 (수) 13:08 ㆍ조회 : 350

허굉(許硡)

조선시대사인물

 조선전기 예조판서, 우찬성,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굉지(宏之), 징와(澄窩)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인물
성격
문신
성별
출생일
1471년(성종 2)
사망일
1529년(중종 24)
본관
양천(陽川)
경력
이조정랑, 직제학, 동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함경도관찰사
시대 조선
성격 문신
성별 남
출생일:  1471년(성종 2)
사망일 : 1529년(중종 24)
본관 :양천(陽川)
경력: 이조정랑, 직제학, 동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함경도관찰사
              정의
조선전기 예조판서, 우찬성,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키워드 허침(琛)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굉지(宏之), 호는 징와(澄窩). 허비(許扉)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허손(許蓀)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허침(許琛)이며, 어머니는 유시(柳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92년(성종 23) 사마시에 합격하고, 1503년(연산군 9)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에 등용되어 정자·지평으로 승직하였다. 그 뒤 이조정랑·사인·사간·직제학을 역임하고, 1515년 동부승지가 되었다. 이듬해 전라도관찰사로 나갔다가 다시 내직으로 돌아와 대사간이 되었으며, 곧 대사헌이 되었다.
그 뒤 평안·경기·함경도의 관찰사를 역임하였으며, 1520년 함경도관찰사 재직시 조윤손(曺潤孫)이 여연·무창에 잠입한 야인(野人)을 정벌할 때에 그를 도와 큰 공을 세웠다.
그해에 예조판서로 승직되고 1528년 우찬성이 되었다. 이때에 서쪽 변방의 야인들이 빈번히 국경을 침입, 소란을 피우자 순변사(巡邊使)가 되어 그들을 평정하고 돌아왔다. 평안도관찰사로 재직 중 사망 하였다.

*허굉(硡) 의 사위는 종실  파림군(坡林君) 이주(李珘)이고 아버지는 덕풍군 이이(德豊君 李恞),
본관은 전주(). 자는 언기()이고 이름은 이주()이다. 1500년(연산군 6)에 월산대군의 독자인 덕풍군()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9세 때인 1508년(중종 2) 파림군에 책봉되었고 뒤에 정의대부()의 품계에 올랐다. 
학문을 좋아하고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1541년(중종 35)에 졸하였다. 부인은 현부인() 양천 허씨()이다. 묘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신원동 능골마을에 위치한 월산대군 묘역 내에 있으며 부인 양천 허씨의 묘와 합장묘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파림군 [坡林君] (두산백과) 일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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