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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세조 문경공 휘 공(珙) 묘소 참배 및 문경공의 첫째 아들 동주사공 휘 정(程) 표지석 설치
ㆍ작성자 : 대종회 ㆍ작성일 : 2016-05-03 (화) 14:26 ㆍ조회 : 4618



2016 4 29(금요일) 아침 7 30, 전국에서 모인 40명의 후손들로 대종회 회관 사무실이 시끌벅적 붐빈다. 오늘이 바로 모든 양천허씨의 선조가 되는 10세조 문경공 묘소에 참배를 하는 날이다. 문경공에 대한 성묘는 지난 4 동안 관할 부대의 사정에 의하여 참배를 수가 없었다. 후손들의 간절한 마음을 아셨는지 하늘 또한 구름 없이 파랗다. 엘리베이터가 분주히 움직인다. 예초기, 전기톱, 갈퀴, , , 제례복, 잔디, 마실 짐이 많다. 4 동안 못했던 벌초를 하자니 장비가 많을 밖에 없다. 허웅 부회장은 정성드려 준비한 (향나무 조각) 향로를 보자기에 싸왔다. 대종회에서 준비한 뜨끈뜨끈 떡도 도착했다.

 


(문경공 할아버님 묘소에 가던 날)



시계는 어느덧 8시를 가리키고 전세버스는 기다렸다는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퇴근 시간 혼잡을 피해 외곽 순환도로를 선택했다. 차내에서는 문경공 할아버님에 대한 뿌리 교육이 시작되었다. 모두 숨죽이며 할아버님의 음덕을 되새겨 본다. 버스는 어느 판문점으로 향하는 다리 앞의 검문소에 멈춰섰다. 왼쪽으로 자유의 다리가 보인다. 허덕행 상임고문, 허평환 부회장, 그리고 허준무, 허백무, 허송무, 허종범 합천공파 종원들이 버스를 타고 일행들을 반갑게 맞이해 준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장병들이 차에 올라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대조하며 신원 확인에 들어갔다. 신원 확인이 모두 끝나자 허평환 부회장이 차를 선두로, 합천공파 종원들이 타고온 , 그리고 버스, 이렇게 3대가 다리를 건너간다. 판문점이라는 표지판과 개성이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이렇게 가기를 5 남짓, 다른 검문소가 나온다. 영어와 한글이 뒤섞여 있다. JSA(Joint Security Area: 공동경비구역) 대대 관할 검문소다. 공동경비구역은 한반도를 가로지르는 250km 비무장 지대 중에 유일하게 철조망 없이 선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대치하고 있는 구역이다. 우리에게는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공동경비구역으로 알려진 부대다. 계급에 관계없이 모두 선글라스와 권총을 착용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판문점 표지판이 보인다, 통일대교 검문소에서)



버스에 오른 JSA 장병들이 다시한번 제출한 방문자 명단과 주민등록번호, 그리고 얼굴을 대조 확인한다. 시간이 한참 지나 간다. 확인할 것들이 정말 많은 모양이다. 한참을 지났을 , 병사들이 각각의 차량에 나뉘어 타기 시작하고, 유엔(UN)기를 차량에 장착한다. 군용 차량이 선두에서 모든 차량을 인도한다. 전세버스 운전사는 경계를 넘어가 적이 없다고 이야기하며 모든 방문자는 부대에서 운영하는 버스로 차량을 바꾸어타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직접 에스코트를 받으며 가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다. 고개를 넘어, 산을 끼고 돌아 얼마를 가니 다른 가에 줄지어 도열한 장병들이 차량을 멈추어 세운다. 모두 JSA 부대원들이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 가야 하는 곳이다

 

차량에서 하차하여 문경공 묘소까지 걸아가는 길이다. 버스 아래 짐칸의 문이 열리고, 준비해 예초기 3대를 비롯한 모든 장비와 제물 그리고 동주사공 종중에서 준비한 비석과 좌대 그리고 잔디까지 하나 하나 꺼내어 후손들 모두가 한짐 들거나 어깨에 메고 대열을 정비하니 JSA 병사들이 , , 없이 우리 일행을 에워싼 에스코트를 한다.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로 걸어가는 길에 멀리 앞쪽으로 반짝하고 문경공 할아버님의 신도비 끝이 보인다. 500 미터 떨어진 백악산(白岳山)기슭의 능선까지 이동한 , 개울을 건너 기슭의 숲을 헤치며 100여미터를 오르자 숲에 가려졌던 문경공의 신도비가 보이고 , 위쪽 기슭으로도 풀 숲 속에 가려진 4기의 묘소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위의 묘소가 문경공의 묘소이다. 묘소 앞에 표석이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아래 묘는 아무 표시가 없다. 나머지 2기의 묘소 또한 표석 없이 700년의 세월 속에 형체를 알아볼 없는 아주 작은 석물 만이 양쪽에 놓여있다. 망주석일까? 아니면 동자석일까? 봉분 4기의 묘소는 싸리나무 참나무 억새풀 , 키가 가까이 되는 잡초들로 묘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었다. 산신제를 지내자 마자 예초기와 전기톱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JSA 장병들도 무전으로 이곳에서 예초기와 전기톱을 사용한다는 메시지를 어디론가 보내고 있다. 시야를 가리던 나무와 잡초들이 힘없이 쓰러진다. 그렇게 쓰러진 잡초들은 기다렸다는 옆에서 갈퀴를 쥐고 있던 할아버님의 후손들에 의해 이리 저리 모아지고 있었다. 모두들 한마음 한 뜻이었을까? 누가 이야기 하지 않아도 잘라진 풀과 나무를 가급적 묘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긴다.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가 말끔해 졌다. 묘소 전체가 눈에 들어왔다. 묘가 어찌 이렇게 수가 있나? 700년이 훌쩍 지난 묘소, 사초를 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조선 19 임금 숙종 34(1708) 이다. 사초와 함께 세워진 신도비에는 당시 작업에 참여했던 분들의 이름이 한자 한자 기록되어 있다. 허씨 뿐만이 아니다 영평부원군 이원익, 영흥부원군 김제남, 영의정 이덕형, 좌의정 이항복, 이조판서 이정구,... 한국 역사에 나오는 유명한 분들의 휘 자가 없이 빼곡이 적혀있다.(양천허씨 합천공파종사, 제4장 10세 문경공 허공 신도석표, 2015 에서)

 

이분 모두가 양천 허씨의 사위이고, 외손이고, 이렇게 저렇게 연결이 되는 분들이다. 지난 수백 년간 눈보라와 비바람에 시달렸음에도 봉분의 크기가 조선 왕릉의 크기와 전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컷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할아버님을 뵈우니, 양천 허문의 후손으로서 또 할아버님의 명예에 흠집을 내지 않기 위하여 언행과 몸가짐을 더욱 더 조심스럽게 해야 하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일행 모두는 일손을 멈추고 문경공 할아버님 묘소 앞으로 모였다. 초헌은 대종회 회장이, 아헌은 3 대파를 대표하여, 동주사공파는 허이 대종회 고문이, 판도좌랑공파는 허경행 판도좌랑공파 종중 회장이, 대제학공파는 허금정 운영위원이, 종헌은 허평환 대종회 부회장이 맡아 잔을 올렸다. 그리고, 후손들 따로 잔을 올리고 싶은 후손들은 모두 잔씩 올리도록 했다. 이어서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묘소를 말끔히 단장하기 시작했다.

 

문경공 묘소 아래 쪽에 나란히 위치한 3개의 묘소와 관련하여 대종회는 지난 2011 9 22 대종회 임원진과 운영위원 45명의 문경공 묘소 참배 , 문경공의 첫째 아들인 동주사공 (), 문경공의 번째 부인 창원군부인 철원 최씨, 그리고 다섯째 아들인 대제학공 () 표석을 각기 세우기로 의견을 모은 , 지난 2012 운영위원회에서 이를 결정했다. 물론 표지석은 해당 종중에서 세우기로 하였으나 지금까지 뜻을 이루지 못해 왔다. 그러나 이번 참배 동주사공파 종중에서 표석을 마련해 표석을 세우고 고유제를 지내는 깊은 시간을 가졌다. 고유제를 마친 모든 후손들의 손이 다시 분주해졌다. 아래 쪽의 묘소와 문경공의 신도비 주면 또한 예초기와 전기톱으로 말끔히 단장을 하고 있다. 시간은 어느 점심 시간을 훌쩍 넘겼다.





(동주사공파 종회에서 준비한 동주사공 휘 정() 표지석)



경계를 서고 있는 장병들에게 떡과 물을 권했으나, 먹을 없다고 한다. 우리 후손들이 모두 철수 하면 때서야 점심 식사를 것이라 한다. 우리 모두는 미안했다. 그래서 모든 것을 빨리 서두르기로 했다. 2시간 넘게 모든 후손들이 정성껏 작업한 문경공 이하 3기의 묘소는 봉분 모두가 마치 이발이라도 것처럼 말끔해졌다. 아쉽지만 할아버님과 작별을 고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다시 한번 장병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버스까지 걸어오는 길에도 뒤를 돌아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를 다시 한번 응시한다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를 뒤로하고 출발한 버스는 어느 JSA 구역을 벗어나고 있었다. 이제는 맞겨 두었던 신분증을 받는 시간이다. 장병들이 함께 수만 있다면 장병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픈 마음이 하나 가득이다... 우리 모두 장병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통일촌 장단콩 마을로 향했다. 오늘 점심 메뉴는 유명한 장단콩으로 만든 두부 요리다. 동주사공파 종중의 허수욱 회장이 제공하는 점심 식사다. 모든 종원들이 동동주와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한다. 옆에 앉은 처음 얼굴도 낮설지가 않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동주사공파 종회 허수욱 회장이 제공한 점심 식사, 통일촌에서)



식사가 끝나니 오늘 제일 열심히 일한 합천공파 종원들이 먼저 떠나겠다고 말을 한다. 합천공파 종중 예하 미수공파 종중의 허준무 회장, 허백무, 허송무, 허종범씨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이분들이 아니었다면 문경공 할아버님의 벌초를 이렇게 빨리 깔끔하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합천공파 허유 총무의 주선으로 바쁜 시간에도 봉사를 하기위해 시간을 분들이다. 식사를 마친 후손들 모두는 허덕행(대종회 상임고문) 명예 장단군수의 안내로 망향제단을 방문했다. 고향이 지척인데도 없는 이산 가족들의 아픔을 오래 전부터 남쪽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찌 헤아릴 수가 있겠는가...

 

허덕행 고문의 설명을 들은 모두 기념 촬영을 했다. 그리고 향한 곳은 도라산 전망대다. 개성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성공단 또한 한눈에 들어 온다. 전망대 왼편에 보이는 길이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이란다. 아니다. 길은 개성을 지나, 평양, 신의주까지 가는 길이다. 도로를 바라볼 밖에 없는 현실 속에 분단의 한을 다시한번 되새겨 본다. 도라산 전망대를 떠나 도라산역사 구경도 했다. 하루속히 통일이 되어 헤어진 가족들은 물론 남과 북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양천 허문 모두가 함께 지낼 있는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망향제단' 앞에서, 저 앞쪽으로 허덕행 대종회 상임 고문이 어릴 때 살던 장단 고향 땅이 보인다. - 첫줄 좌측 부터 허유권 대종회 운영위원, 허인무 자산공파 종중 회장, 허경행 판도좌랑공파 종회 회장, 허원회 대종회 운영위원, 허찬 대종회 명예회장 사모님, 허찬 대종회 명예회장, 허덕행 대종회 상임고문, 허일범 대종회 회장, 허통 대종회 수석부회장, 허경욱 대종회 운영위원, 허덕조 대종회 운영위원, 제일 앞쪽 - 허유 대종회 운영위원)



(도라산 전망대에서)





(도라산 역, 평양행 열차 출발 시간이 없다. 내일은 출발을 하려는지...)




(DMZ - Demilitarized Zone,  '비무장지대'라는 문구의 모자. 

싸움 없는 평화의 땅, 그 한반도를 생각하며...)



아쉬웠던 것은 사방에 퍼져 자라고 있는 나무를 뿌리채 뽑아내지 못한 것과 사진이나 영상 촬영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모든 장비를 갖고 갔으나 장병들은 영상을 촬영하지 못하게 했다. 그것이 규칙이란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규칙을 지키는 것이 도리아니겠는가

 

다음 번에는 촬영 허가가 났으면 하는 마음, 그리고 군부대와 협조하여 매년 성묘를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개의 소원이 이루어지도록 우리 양천 허문 모두 조상님께 기도하며 노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끝으로, 이번 문경공 할아버님 묘소 방문을 위해 군 부대의 협조를 이끌어내 준 허평환 부회장(육군 예비역 중장)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허덕조 운영위원을 비롯 문경공 할아버님 묘소 벌초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은 모든 참례자 여러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더하여 문경공 할아버님의 묘소는 허평환 부회장의 노력으로 되찾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대종회 사무처

  


허효연
2016-05-03 23:44
모두  수고하셨어요!
문장을  얼마나  잘  쓰셨는지  
글로나마  함께  갔다와서  아쉬움을 달랬네요.
다음번엔  진짜로 직접 갔다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짐같은걸  잘 들고  풀도 잘 뽑을수 있어요.
사진을 찍을수 있으면 모를가,  
직접 눈으로만  보는수밖에 없는 우리네 신세.....
거기에  판도좌랑공관할아버지묘소는 없는가요?
동주사공파정할아버지의 표지석만  세우고 오셨다고 하시니요.
그리고  대제학공부할아버지의 표지석도 세우려했다고는 하시는데
후예의 인원수가  제일 많은  문경공공할아버지의 셋째아들인
저의  판도좌랑공관할아버지의  표지석말씀은 없어서요.
   
허장호
2016-05-04 07:00
애써주신 대종회와 참여하신 종친님께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문경공 할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725년이 되는 오늘에 이르러  제주도가 고향인 저와 저의 아내가 판문점 근처 일반인 출입통제구역에 위치한 문경공 묘소에 참배를 하게 되니, 참으로 벅찬 기쁨과 만단의 감회를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양천허씨 15세 송암공파(제주도)의 저의 부부는 미리 준비한 제주도에서 생산된 한라산 소주로 문경공 할아버님 묘소 앞에 따로 잔을 올리고 절을 하였습니다.
통일촌 장단콩 마을 점심 식사에서도  여러 종친님께서 제주도의 한라산 소주 맛을 보았습니다.
   
허유권
2016-05-04 20:08
10세조 문경공 할아버지묘지를 4년만에 다녀오면서 느끼어 봅니다만 고려시대에도 명성을 떨치시고, 남북이 분단된 현실에도 후손들에게 드높은 양천허씨의 위상을 비무장지대에서도 떨치시는군요.언제 또 갈지는 예측은 못하지만 복을 많이 받으신 분입니다 후손들이 참배를 할수있게 자리를 마련하여주시니.감사할 따름입니다. 하루 빨리 남북통일이 되어서 이북에 계시는 선조님의 묘소를 참배하는 날을 고대합니다.글을쓰신 대종회 종인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허장호 하루 빨리 남북통일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저의 선친(육군 중위)은 통일성업을 이루지 못하고 1951년 5월 8일 전사하셨습니다.' 망향제단'의 비문에는 동족상잔의 비극, 실향민의 아품, 통일의 한을 품은채 유명을 달리한 넋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5/6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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