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북한이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에 팔아먹었다!!!” 하는 선생님의 학교 교육과 뉴스를 접하면서 우리 어린 친구들이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 절반을 중국에 빼앗겼다고, 우리는 분노하며 <병신새끼들>이라고 북한을 비난했고, 또한 백두산을 강탈해간 중국도 싸잡아 힐난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그렇게 알고 반세기가 지나 60중반의 나이가 되어 중국에 같다가 잠시 짬을 내어 단동 압록강가를 들러 보면서 이는 나의 편견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당시 안내하던 현지분이 압록강과 두만강에는 많은 섬들이 있는데, 모두 북한 영토라고 하는데 적잖이 놀라면서, 무슨 사언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현지안내자의 말에 따르면 원래 저 섬들은 북한 것도 중국 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6. 25사변 이후 중국이 북한에 백두산의 절반을 양도해 달라고 하니까, 북한은 그러면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모든 섬들은 모두 북한소유로 해달라고 요구해서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이 가져가고, 압록강 두만강에 있는 모든 섬들은 북한 소유로 한다고 조. 중 조약서에 명기하고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하였다. 일종의 거래였던 것이다.
나는 이 말이 믿겨지지 않아 귀국하여 북 중간 국경 지도를 검색해 보니 과연 그 말이 사실임을 확인하였다.
그러면서 필자는 한순간 교육에 대한 분노감도 느꼈다. 아무리 반공을 국시로 하고, 북한을 이적국가라고는 하지만 역사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가르쳐야 하는데, 어린 학생들의 분노를 야기하려고 백두산 절반을 빼앗긴 것만 교육시키고, 이면의 거래는 감춘 것이 안타까웠다. 현재의 교육도 마찬가지다. 왜곡된 각종 자료로 교육을 시키는 현실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한다. 한국의 한강은 큰 강인데 남이섬, 뚝섬, 여의도, 밤섬 등 몇 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알기로는 압록강에는 위화도라는 섬만 있는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현지에서 보니 뜻밖에도 크고 작은 많은 섬이 있었다.
실제로 현지를 관광하면서 황금평에 가보니까 신의주와 황금평은 강이 넓어 멀리 떨어져 있고, 오히려 중국 쪽이 가까워 서로 먹을 것을 던져주기도 하고 이야기도 나눈다고 한다. 그런데 황금평이 북한 땅이라고 하는데 에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며 어째서 이럴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리고 압록강에서 중국 유람선을 타고 다녀보니 그 실상을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단지 압록강 철교 밑에 있는 월량도는 현재 중국소유인데, 여의도 같이 수많은 빌딩들이 들어서 있었다. 원래 이 섬의 소유는 북한 것이었는데 북한과 중국 간의 거래가 있어 서로 물물교환을 해서 압록강과 두만강에 있는 모든 섬 중에 유일하게 현재 이 월량도만 중국의 소유라고 하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중국 유람선이 관광을 하는 도중 북한의 작은 선박이 다가오니까 유람선이 잠시 멈춰 서서 북한 선박이 관광객들에게 관광물품을 팔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물건을 파는 북한사람의 모습을 보며 그래도 서로 국적은 달라도 적대적이지 않고 협조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에 좋아보였다.
어릴 때의 우리 모습이 떠올라 많이 웃은 일도 있었다. 한 북한군 여군이 상의를 벗고 더운 날 염소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이 하도 우스워서 한참을 웃었다. 바로 50여 년 전 송아지 염소 등을 잡기 위해 들판을 이리 뛰고 저리 뛰던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백두산을 절반을 주고 강에 있는 모든 섬들이 북한 소유가 되었다는 것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았다. 결국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의 절반을 중국에게 준 것은 안타까운 일이긴 하다. 그러나 전체 영토가 넓어진 것을 보면 그리 큰 손해를 본 것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중국은 영토가 크고 일본은 작다고 모두가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의 해양영토까지 생각하면 일본 영토가 중국에 비해 그리 크게 작은 것도 아니다. 아울러 길고긴 압록강과 두만강에서 강의 거의를 차지하고 있는 북한을 보면서 여러 가지 역사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되었다.
-남북의 평화통일과 세계문명의 창조-
필자는 동양학을 연구해온 학자로서 현 남북관계의 위험한 상황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현 시국은 남과 북이 전쟁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는 현실에 가슴이 아프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우리 민족 앞에 전쟁이 아닌 남북평화통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또한 그렇게 될 것으로 믿고 있다.
필자는 남북이 평화통일을 이루고 세계 인류를 평화의 길로 안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사상인 “홍익인간정신(弘益人間精神)을 바탕으로 제세이화 광제창생(濟世理化 廣濟蒼生)의 길이 열릴 것” 으로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세계문명을 창조했던 우리 민족의 정신이 미래 인류의 “새로운 문명 즉 디지털문명을 창조”하는데 우리가 동방박사의 자격으로 역사의 주역이 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북은 전쟁의 길이 아니고, 공공의 이익을 창출하여 인류를 평화의 시대로 인도할 시대적 소명을 다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중산 허현강
▲북한 황금평과 중국 영토의 경계 울타리 모습 ▲중국영토가 되어 월량도에 중국이 건설한 시가지 모습 ▲압록강 유람선 여행 중 중국 유람선에 붙어서 장사하는 북한 선박
압록강 철교 앞에서 신의주를 바라보며
북한 황금평과 중국의 국경 울타리
중국에서 본 황금평
만리장성의 시발점
중국 유람선에 붙어 장사하는 북한 소형선박
만리장성의 동쪽 끝 성벽앞에서
허유권
2017-08-18 07:58
현강 종인님! 안녕하십니까 ? 관북지역 소식 잘읽어 보았습니다. 감사 합니다.더운 날씨에 몸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수고 많이 하셨네요^^
허현강
2017-08-20 21:15
유권 대부님 안녕하세요.
안그래도 북한쪽을 바라보며 향리인 장단땅도 떠오르고,
북한지역에 사시는 삼촌 형님 고모 등 일가분들의 생각도 하였고,
북한에 계신 함경도지역의 일가분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대부님과 용진공파 종인들의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루속히 전쟁없는 평화통일이 되어 남과북이 하나가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허유권
2017-08-21 11:58
예, 고향을 잃은 모든 실향민들의 숙원이지요.그나마 1세대들은 한분두분씩 세상을 등지고 계시지를 않아요. 강건너 신의주는 저희 조부님이 사시던 곳입니다.부친께서 늘 말씀 하시길 압록강 다리가 그 당시 부산의 영도다리 처럼 들리고 겨울에는 압록강에서 스케이트도 타고 하였답니다.조부께서는 재산이 있어. 1.4후퇴때 재산을 지키노라 아버님과 삼촌만 보내시고 당신은 내려 오시지를 못하셨어요.전쟁이 곧 끝나는줄 알았겠지요.그리고 이후 공산주의자들은 지주들을 무자비하개 숙청을 감행 하였고 결국은 남과북은 분단이 되고 말았습니다.사연은 많으나 반쪽 고향인 저로서는 이렇게 사진으로 보니 감개가 무량 합니다.시간이 나면 한번 다녀 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좋은 하루되시고 가내 조상님의 은총 가득 하시길 바랍니다.
허효연
2017-08-21 21:57
허현강종친님 좋은데 갔다오셔서 남다른 글을 구수하게 잘 엮으셨네요.
저는 양천허씨15세용진공징파로서 조선에 가서 입북조할아버지묘지랑 양천허씨집성촌이랑 다 둘러보고싶어요. 하루속히 남북평화통일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남북자유왕래라도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수고하셨어요. 건강과 행복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랄게요~^^!
허장호
2017-08-22 09:01
종은 글 고맙습니다. 저는 양천허씨 15세 용진공의 동생인 송암공파(제주도)입니다.
1996년 국회도서관에 재직할 때 통일자료(북한에서 출판된 자료 등) 수집을 위하여 중국에 출장 가서, 연변대학 도서관 간부와 함께 백두산에 오른 추억이 있습니다. 당시에 저는 통일 성업을 아루지 못하고 1951년에 젊은 나이로 전사하신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복사하여 가슴에 품고 백두산 정상에 오르고, 북한 영토를 바라보며 우리의 소원인 조국의 평화통일을 기원하였습니다.
허현강 종친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허현강
2017-08-23 00:47
용진공과 송암공파의 무궁한 발전과 번영을 기원합니다.
단동에서 낮에본 중국과 북한의 모습은 그다지 큰 다른점은 없었는데,
밤에 본 모습은 천지차이였습니다.
북한은 전기가 없어서 깜깜한데, 휘황찬란 한 중국의 모습과는 너무도 대조적이었습니다.
참으로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하루 빨리 평화통일이 되어 같이 발전하는 시기가 오길 바라며,
우리의 일가친척들도 만수무강하기를 기원해 봅니다.
허효연
2017-08-26 00:46
허현강종친님의 축복 고마워요.
엣날 중국이 조선보다 못살때,
날마다 시간을 정해놓고 몇시간씩 정전이 됐었는데
도문시는 변강의 우세를 이용하여 정전때마다
조선남양시의 전기를 끌어다가 사용했기에
비록 거리가 멀어 희미하기는 하나
덕분에 날마다 광명을 누릴수 있었다고 해요.
지금 조선이 어려울때 중국연변에서라도
도와주면서 신세를 갚아야죠.
저의 파 종친들도 살고있는 땅인데요.
허장호
2017-08-26 21:42
길은 멀어도 핏줄은 하나... 2016년에는 우리 부부가 백두산에 오르고 훈춘과 도문(圖們)도 방문했는데, 양천허씨대종회(회장 허일범)와 연변종친회(회장 허연일)의 배려에 고마음을 전합니다.
저의 아들은 1991년 소년한국일보 비둘기 기자단으로 중국대륙의 곳곳을 두루 거쳐 우리나라 어린이로서는 해방 후 처음으로 백두산에 올라서는, 태극기를 꽂고 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르며 겨레가 하나로 어우러질 그날을 그리면서 통일의 꿈나무를 정성껏 심고 왔습니다.
허현강
2017-08-27 01:11
분단지역인 연천, 철책선 밑에서 자란 어린시절의 나는 북한사람들의 얼굴은 빨간줄 알았습니다.
허구헌날 죽고 죽이는 남북한 군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런 느낌을 느꼈었지요.
성장을 하면서 가족과 집안을 알게되었고, 그리고 이데올로기 투쟁에 의해서 나라꼴이 이지경이 된 것에 대하여 분노하며, 해결방안은 무었일까?를 고민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8. 18 도끼만행 사건때 군생활을 했던 나는 "내가 북한의 일가 친척에게 내가 총을 쏘아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고민해 왔습니다.
이제, 하루빨리 평화스런 나라가 되어 "다함께 잘사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