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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별칭/관직명 : 문경공(文敬公) | ||
ㆍ세수(世數) : 13 | ||
ㆍ시호(諡號) : 문경(文敬) | ||
ㆍ봉군(封君) : 양천군 |
13세손 / 참찬 / 시호는 문경(文敬) 봉군은 양천군(陽川君) 고려조 공민왕(壬寅)때 별장으로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참찬 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에 이르렀고 양천군(陽川君)의 군호가 내려졌다. 개성윤공(開城尹公; 僑)의 6아들 중 장자로서 고려가 패망하고 조선왕조가 개국하는 와중에서 아버지 개성윤공은 물론, 족보에 몇 줄 남아 있는 자료 외에 고려조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양천군 시(時)의 배위는 개성왕씨와 의성김씨이다. 양천군의 둘째 아우이며 개성윤공의 3자인 경혜공(景惠公; 應)은 조선조에 협력하고 벼슬이 대사헌에 이르렀으며 배불론(排佛論), 시폐혁신(時弊革新), 전제세제(田制稅制), 신문고(申聞鼓), 노비해방(奴婢解放), 개가금지령(改嫁禁止令) 등 조선조 건국에 크게 이바지 하였다. 따라서 개성윤공의 기록도 조선왕조실록 (許應 사망)에 허응의 아버지(僑)는 개성윤공을 지냈다는 짤막한 표현이 있을 뿐이다. 어떠한 영유인지 확인 할 수는 없으나 현재 개성윤공파의 후손은 조선조에 대사헌을 지낸 허응의 4아들 중 막내인 만석(晩石; 監察) 후손만이 후대를 계승하고 있다. 참고로 오늘의 광산김씨 문중(金長生 家)을 중흥시키고 논산군 연산면 고정리에 정려와 묘소가 모셔져 있는 양천허씨할머니가 바로 개성윤(僑)의 손녀이며 허응(應)의 따님이고 만석(晩石)의 누이이다. 또한 시(時)는 만석(晩石)과 양천허씨할머니의 큰아버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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