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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별칭/관직명 : 한성윤공(漢城尹公) | ||
ㆍ세수(世數) : 14 |
한성윤공 허호(漢城尹公 許灝)는 시조로부터 14세손이다. 공민왕 13년(1364)에 등제하여 지제고 봉상시사로 봉직하였다. 신돈이 내외를 선동하여 위복(威福)을 방자하게 행함을 보고 향리로 돌아 갔다가 조선조에 들어와서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냈다. 후손 허격(許格)이 지은 묘비명에 의하면 공의 이름은 호(灝) 이며 시조 공암촌주 선문(孔巖村主 宣文)에 이어 첨의부중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 판전리사사세자사 시호(諡號) 문경공(文敬公) 허공(許珙)의 10세에 이르기까지 계조(桂組)와 계적(桂籍)이 상승하니 공의 고조이다. 증조는 허정(許程)이며 이부상서 첨의부찬성사(僉議府贊成事)로 칙수동주사(東州使)이다. 할아버지는 허선(許瑄)이니 밀직부사 산기시랑 식목도감록사요 아버지는 허유(許儒)이니 병부시랑 추밀원부사 도제고부사며 어머니는 성주이씨(星州李氏)니 사헌부규정 이복(李僕)의 딸이다. 공이 공민왕13년 갑진에 등제하여 여러번 지제고 봉상시사(知制誥 奉常寺事)에 벼슬하였다가 신돈이 내외를 선동하여 위복(威福)을 자행함을 보고 드디어 물러나 향리로 돌아왔다가 조선조에 들어와 벼슬이 한성판윤이며 배위는 안동김씨 상락군(上洛君) 김앙(金昻)의 딸과 김해김씨 상락부원군 김유(金儒)의 딸 두분이다. 세 아들을 두니 허맹(許孟)은 예조판서요 허중(許仲)은 선무랑(宣務郞) 고산현감이요 허계(許季)는 판관(判官)이다. 손(孫)인 허겸(許謙)은 사헌부감찰이요 허예(許禮)는 주부요 허양(許讓)은 사직, 허한(許翰)과 허간(許幹)은 도사, 허자(許孜)는 사정이며, 증손 허탁(許倬)은 첨지중추부사, 허휴(許休)는 주부요 허건(許健)은 고성현령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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