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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세수(世數) : 15 |
시조로부터 15세손이다. 1365년(공민왕 14) ~ 1431년(세종 13). 자는 원덕(原德)이며 호는 매헌(梅軒) 또는 매수(梅叟)이다. 전리판서 야당공(埜堂公) 금(錦)의 아들이며 밀직사지신사 경(絅)의 손자이다. 벼슬은 통정대부 판봉상시사 행광주목사 증정헌대부 이조판서겸 지의금부사이다. 16세에 국자감시에 합격하고 19세에 생원시에 합격 성균생원이 되었다. 일찍이 정포은,원천석,김자수,신덕린 등 명유를 쫓아 배웠고 문정공 신현 선생의 도학 학설이 불에 태워져 전하지 못하게 됨을 탄식하였는데 시집이 있었다고 한다. 공이 사미천에서 놀면서 지은 시가 전하는데 다음과 같다. 乙酉三月 冒雨遊沙彌川上(을유삼월 모우유사미천상) {을유년(1405) 3월 비를 무릅쓰고 사미천의 냇가에서 놀다.} 勝日尋芳草(승일심방초) 좋은 시절 방초를 찾아 沙彌川上濱(사미천상빈) 사미천(沙彌川)의 물가에 갔노라. 喧林求友鳥(훤림구우조) 숲속에는 벗을 찾는 새소리 시끄럽고 趁隴耦耕人(진롱우경인) 언덕에는 밭을가는 농부들 지나가네. 楊柳含朝雨(양유함조우) 버드나무는 아침비를 머금었고 桃花笑晩春(도화소만춘) 복숭아 꽃은 늦은 봄에 피었어라. 山村毁譽少(산촌훼예소) 산 마을에는 헐뜯음과 칭송함 적으니 偏喜遠風塵(편희원풍진) 풍진의 세상 멀리함이 특히 좋구나. 우왕6년 경신(1380년) 5월 이여량(李汝良) 방(榜) 등국자시에 급제하니 나이가 16이요 우왕9년 계해(1383년) 왕승 방 등승보(王昇 榜 登升補)하니 나이가 19세였다. 조선조에 출사하여 벼슬이 광주목사에 이르렀다. 67세에 별세하니 종(琮) 침(琛)의 현귀(顯貴)로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 매헌공 묘표(梅軒公 墓表) 소개 ] 자는 원덕이다. 증조는 백(伯)으로 동중서문하평장사이고 조부는 밀직사지신사로 경(絅)이요 아버지는 전리판서 금(錦)이며 어머니는 원주원씨로 외조는 정당문학 송수이다. 공민왕14년(1365) 공께서 태어나 우왕6년(1380)에 진사에 급제하고 3년 후 계해(1383)에 생원에 승진되었다. 조선 태종조에 광주목사에 오르고 판봉상시사로 사퇴하였다. 풍양(지금의 양주)에 살면서 음풍명월로 자위 하였다. 별호는 매헌 또는 매수라 하였다. 매헌시집이 있었다. 1431년(세종13)2월 10일 67세에 별세하였다. 배위는 안동권씨이고 증조는 도첨의사 문정공 부이고 조는 도첨의우전승으로 정헌공 구이고 아버지는 동지밀직으로 중귀이다. 어머니는 덕양(행주)기씨 이다. 덕성부원군 철(轍)의 따님으로 원지정황후의 형이다. 부인이 공과 같은 연생이니 별세 하신 후 그 달 18일에 별세한지라 그해 10월에 합장하니 장단 봉천 서향산(西向山)이다. 증손은 종과 침이다. 세조,예종,성종조에 현귀함으로 3대에 걸쳐 추작하였다. 공은 이조판서가 되고 부인은 정부인이 되었다. 2남을 두니 양양도호부사인 비와 추이니 지금 자손이 칠팔구세에 삼공과 열경이 십여인이나 된다. 1644년(인조22) 후 32년 1676년(숙종2) 10월, 7세손 영의정 적이 제 강화유수 질로 더불어 묘전에 입비하기를 꾀하여 그 벌석과 치석과 각석하였다. 유수가 자판하였고 입석 때 유사는 8세손 진사 학과, 유학 감과, 9세손 순과, 10세손 군수 장 등 네사람이다. 7세손 의정부 우의정 허목 찬 외후손 승정원자부승지 정창도 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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