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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별칭/관직명 : 밀직부사(密直副使) | ||
ㆍ세수(世數) : 12 | ||
ㆍ봉군(封君) : 양천군 |
12세손 / 밀직부사(密直副使) 고려 공민왕때의 문신이며 시조로부터 12세손이다. 첨의중찬(僉議中贊) 허공(許珙)의 손자, 1341년(충혜왕 복위 2) 강릉대군(江陵大君) 기(祺)를 따라 연경(燕京)에 가서 숙위(宿衛), 1351년(공민왕 1) 통례문판관(通禮門判官)으로 서북면찰방(西北面察訪)이 되어 왜구를 방어하였다. 이듬해 감찰장령(監察掌令)에 재직 중 앞서 강릉대군이 원나라에 있을 때 시종한 공으로 3등공신에 책록, 뒤에 합문판사(閤門判事)에 이르렀다. 홍건적 침입 때 병마사(兵馬使)로 출전하였을 때 사감으로 장군 최복량(崔福良)을 죽였다가, 홍건적 격퇴 후 정승 김용(金鏞)에 의해 섬에 유배되어 봉졸(烽卒)로 충군(充軍)되었다. 뒤에 재차 밀직부사에 기용되어, 1363년 앞서 홍건적의 난 때 개성을 탈환하고 공민왕을 호종한 공으로 1등공신에 책록되어 양천군(陽川君)에 봉해졌다. 1365년(공민왕 14) 요승이며 반역죄로 처형된 신돈(辛旽)의 전횡을 비난하는 직언(直言)을 하다가 청주(淸州)에 유배되었다. * 강릉대군 기(江陵大君 祺) : 공민왕(恭愍王) * 신돈(辛旽) : 고려 말의 승려. 공민왕의 전폭적인 신임으로 개혁정치를 하다가, 오만과 방탕 음란한 생활로 변질되어 끝내 왕의 불신을 받자 왕을 살해하려는 역모를 꾀하다 처형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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