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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세수(世數) : 15 |
판서공 허맹(判書公 許孟)은 시조로부터 15세손이다. 후손 허격(許格)이 지은 묘표(墓表)에 의하면 이름은 허맹(許孟)이요 성은 허씨이며 양천인으로고려 공암촌주 선문(宣文)의 15세손이다. 충렬왕 묘정(廟廷) 배향공신(配享功臣)인 첨의부중찬(僉議府中贊) 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 증시(贈諡) 문경공 허공(文敬公 許珙)의 5세손이다. 대대로 고관대작을 지낸 명문의 문중이었다. 고조는 허정(許程)이니 이부상서(吏部尙書) 첨의부(僉議府) 찬성사(贊成事)로 칙수동주사(勅授東州使)요 증조는 허선(許瑄)이니 밀직부사 산기시랑(密直副使散騎侍郞) 식목도감녹사(拭目都監錄事)요 조부는 허유(許儒)이니 병부시랑 추밀원부사(兵部侍郞樞密院副使) 도제고부사(都祭庫副使)요 아버지는 허호(許灝)이니 지제고봉상시사(知製誥奉常寺事)로 신돈(辛旽)이 조정을 문란케 함을 보고 벼슬을 버리고 향리(鄕里)로 돌아왔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초야에 있는 사람을 예를 갖추어 불러서 벼슬을 시키는 징벽(徵辟)에 따라 한성판윤을 지냈다. 어머니는 안동김씨 상락군 김앙(上洛君 金昻)의 딸이다. 세 아들이 있으니 허겸(許謙)은 사헌부 감찰이요 허예(許禮)는 주부이며 허양(許讓)은 사직이다. 손자 허이(許儞)는 사직, 허탁(許倬)은 첨지중추부사, 허휴(許休)는 주부, 허건(許健)은 고성현령, 허작(許作)은 현감,허혼(許渾)은 진사로 벼슬이 참군(參軍)이다. 증손 허천주(許天柱)는 예조판서요 허천익(許天益)은 공조참의요 허천적(許天迪)은 공조참판이며 허징(許徵), 허진(許振), 허분(許奮)은 진사이고 허원(許源)은 생원으로 관(官)이 참군이며 예안현감이다. 공의 묘는 충북 진천군 만승면 옥정현 아래 무수리(無愁里) 뒷산 신좌(辛坐)의 언덕에 있다. 부인은 남양홍씨로 지 주사(知 州使) 기(奇)씨의 딸이며 묘는 만승면 재궁동(齋宮洞) 용약소(龍躍沼) 위 건좌(乾坐)의 언덕에 있다. 난(亂) 후 모두 실전(失傳)되었다가 순조5년(1805) 을축년 21세손 허유(許鍮)가 심혈을 기우려 봉심(奉審)하니 묘 가운데서 지석(方墳誌石)이 완연하게 나옴에 정묘년(丁卯)에 후손들이 협력하여 봉축개수하고 제전을 마련, 재사(齋舍)를 수호 하였다. * 징벽(徵辟) : 초야에 있는 사람을 예를 갖추어 불러서 벼슬을 시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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