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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조선 | ||
ㆍ세수(世數) : 17 |
부사공 허탁(府事公 許倬)은 시조로부터 17세손이다. 후손 허명(許洺)이 지은 묘비명에 우리 큰 선조인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嘉善大夫僉知中樞府事) 허탁(許倬) 묘의 구비(舊碑)가 잔결(殘缺)되어 역내 4개처 선롱(先隴)에 신석(新石)을 개수(改竪) 하였다고 적고 있다. 일찍 착수 못함은 아버지와 조(祖),증조(曾祖)의 묘를 돌봄이 급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보책이 거증하고 있는 바에 따라 자손된 도리로써 봉심하지 않을 수 없어 진천으로 가서 사방으로 염탐하였다. 즉 선비들의 이야기며 여러 사람이 모여 잔치를 벌이고 있는 곳 행인들의 주고 받는 이야기를 흘려 듣는등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다. 이에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듯이 꿈에 붉은 머리의 노인이 나타나 가르키는 곳을 찾아 나서니 산 계곡이 여실한지라 곧 바로 거친 땅 한 귀퉁이에 돌로 봉한곳을 파 들어가니 지석과 갈석이 나왔다. 석면(石面)에 가선대부 첨지중추부사(嘉善大夫僉知中樞府事) 허공 탁(倬) 지묘라고 써 있는지라 비갈을 안고 흐르는 눈물이 옷깃을 적셨다. 비(碑) 뒷면에는 작은 글씨가 일그러져 판독키 어려우나 미루어보건대 황증조(皇曾祖) 한성판윤 허호(許灝)와 황조고예조판서(皇祖考禮曹判書) 맹(孟)과 조비(祖비) 정부인(貞夫人) 남양홍씨(南陽洪氏)요 황고사헌부감찰(皇考司憲府監察) 허겸(許謙)과 현비숙부인(顯妣淑夫人) 광주노씨(光州盧氏)묘, 또 그곁에 주부(主簿) 허예(許禮)와 고성현령(固城縣令) 건(健) 등이 사득(査得)되니 공의 숙부(叔父)와 계씨묘(季氏墓)라 나아가 향을 올렸다. 정묘(丁卯) 봄에 순흥(順興)과 고성(固城), 단양(丹陽)에 통지하여 제족(諸族)을 모아 개사봉축(改莎封築)하여 제전(祭田)을 마련하고 묘막(墓幕)을 지어 수호돈독하게 하였으며,다음해 무진(戊辰), 고성 공정산(公丁山) 선조비 정부인 남평문씨(南平文氏) 묘에 가서 성묘하여 감읍(感泣)하고 돌아와서 비로소 집에서 편안히 있었다. * 잔결(殘缺) : 일부분이 빠져 있어 완전하지 못함. * 계씨(季氏) : ‘남의 아우’를 높이어 일컫는 말. 제씨(弟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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