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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조선 | ||
ㆍ별칭/관직명 : 현령공(縣令公) | ||
ㆍ세수(世數) : 17 |
현령공 허건(縣令公 許健)은 시조로부터 17세손이다. 벼슬은 고성현령(固城縣令)을 지냈으며 증조는 한성판윤(漢城判尹)을 지낸 허호(許灝)이고 조부는 예조판서 허맹(禮曹判書 許孟), 아버지는 감찰(監察)을 지낸 허겸(許謙)이고 어머니는 광주노씨(光州盧氏)이며 배위는 밀양박씨(密陽朴氏)이다. 후손 허격(許格)이 지은 공의 묘표(墓表)는 다음과 같다. 공의 드높은 풍도(風度)와 훌륭한 덕망과 일생의 이력이 세대가 멀고 문적이 없어져서 소상히 알 길이 없으니 개탄할 만하다. 오직 보첩(譜牒)에 실려 있는것과 <왕조실록>에 기록된 것들을 가지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삼가 족보를 살펴보면 공은 형수인 남평문씨(南平文氏)를 받들고 중질(仲姪)을 인솔하여 고성현령의 임소(任所)로 부임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이 아직도 이곳에 거주하니 나의 선조이신 공조참의공 허천익(工曹參議公 許天益)의 후손들이다. <왕조실록>에 이르기를 "성종19년(1488)5월 계유일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慶尙右道 水軍節度使)인 최전(崔湔)이 아뢰기를 '금년 4월 23일 왜선(倭船) 다섯척이 고성지역으로 돌입하여 사람과 물건을 죽이고 해쳤으며 또 26일 왜선 다섯척이 동현의 가배량(架背梁) 등지에 돌입하였습니다. 신은 사량만호 서창(蛇梁萬戶 徐昌),고성현령 허건(許健)과 함께 병선(兵船)을 거느리고 왜선을 추격하여 큰 바다까지 들어갔습니다.' 하였으니, 공이 당시에 지혜와 용맹을 겸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공의 묘는 박씨(朴氏)와 쌍분(雙墳)으로 충북 진천군 만승면(萬升面) 재궁동(齋宮洞)에 있는 부사공(府使公) 묘의 오른쪽 기슭 자좌(子坐)에 있었는데 현재 정부에서 이 지역을 공업단지로 선정하여 다른 곳으로 이장(移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개장(改葬)할 것을 도모하여 이 지역 안에 있는 선조의 묘와 제단(祭壇)과 함께 동시에 한성윤공(漢城尹公) 묘의 좌우 언덕에 이장(移葬)하여 매년 시제(時祭)를 올린다. 묘는 충북 진천군 광혜원면 금곡리 선영에 합폄으로 되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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