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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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사건(許思鍵)
ㆍ분류 : 조선  
ㆍ세수(世數) :  19
허사건(許思鍵)
 
 
장령공 허사건(掌令公 許思鍵)은 시조부터 19세손이며 대제학공 부(富)의 8세손이다.
1528년(중종23) ~ 1584년(선조17).
자는 중고(仲固)이고 1568년(선조1년) 문과에 급제후 여러 벼슬을 지내고
1579년(선조12)에 사헌부 장령(司憲府掌令)에 올랐다.
공은 당시의 당쟁(黨爭)에 심려하며 한탄하기를 "대신(大臣)들이 당을 만들어 편벽되어 다투니
누가 국정(國政)을 감독하겠는가" 하고는 즉시 대사헌(大司憲)을 설득하여
며칠동안 상의한 끝에 삼사(三司)에서 연명(連名)하여 상소하니 동인(東人)과 서인(西人)들은
옳다 그르다 하여 정론(正論)을 탄핵하는 말이 비등(沸騰)하였는 바
세상에서는 정론형제((正論兄弟)라고 칭하였다.
1580년대 또다시 상소를 올려 간의대(簡儀臺)를 개수(改修)할 것을 청하니
이는 이른바 세종조(世宗朝)때에 처음 만들어 경회루 앞에 설치한 것으로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상황을 관할하는 기구였는데 연도(年度)가 오래되어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았다.
선조(宣祖)는 상소문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즉시 영의정 박순(朴淳)을 도제조(都提調)로 삼고
공을 제조(提調)로 삼아서 5개월만에 공사를 마쳤다.
임금이 크게 칭찬하고 제조등에게 큰 상을 내렸다.
아버지는 진사(進士)인 허숙(許璹)이고 어머니는 언양김씨(彦陽金氏)이며
배위는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묘는 당초 서울시 강서구 목동에 있었으나 도시계획으로 1970년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로 옮겼다가 2001년 6월에 용인시 남사면 창리로 이장하였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91 조선 허천익(許天益) 18
90 조선 허곤(許琨) 수사공(水使公) 18
89 조선 허저(許羝) 18
88 조선 허집(許輯) 18 정간(靖簡) 어세겸
87 조선 허감(許瑊) 증이조참판 18
86 조선 허굉(許硡) 징와공(澄窩公) 19
85 조선 허세린(許世麟) 19 명종조
84 조선 허자(許磁) 좌찬성 19 양천군 위사1등 성세창
83 조선 허반(許磐) 19
82 조선 허일(許鎰) 일심재(一心齋) 19 선무1등
81 조선 허국지(許國砥) 19
80 조선 허사건(許思鍵) 19
79 조선 허상(許磉) 19 양산군 정국2등
78 조선 허광(許礦) 전주부윤(全州府尹) 19 양평(襄平) 제양군 정국4등
77 조선 허확(許確) 동돈령(同敦寧) 19 양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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