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배출인물-모두 보기]는 다양한 보기 및 검색기능을 제공합니다.
  • 바로 아래의 [SORT] 및 [OPTION] 버튼은 정렬방법과 목록/본문의 출력 옵션입니다.
    맨 아래의 검색에는 확장검색 기능을 추가하여 보다 다양한 선택적 검색을 도와줍니다.
  허완(許完)
ㆍ분류 : 조선  
ㆍ세수(世數) :  22
ㆍ시호(諡號) :  충장(忠莊)
허완(許完) 

  

1569년(선조 2)∼1637년(인조 15). 조선 중기의 무신.
시조로부터 22세손이다.
자는 자고(子固).
아버지는 증호조참판 허기(許芑)이며, 어머니는 경산이씨(京山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기송(記誦)을 잘하고 필법에 능하였으며,
자라서는 당숙인 악록 허성(許筬)에게서 글을 배웠다.
재략(才略)을 좋아하고 사장(詞章)에 얽매이지 않아
당시의 유명한 무인 유비(柳斐)·성우길(成佑吉) 등과 무예를 겨루었다.
1593년(선조 26) 무과에 급제, 남쪽해변을 지킬 때 이순신(李舜臣)이 보고 장수의 재목이라 하여
특별히 대해주었고, 돌아와서는 선전관·비국랑(備局郎)을 역임하였다.
유성룡(柳成龍)의 천거로 남평현감이 된 후 도총부도사·경력 등을 거쳐, 단천군수가 되었다.
이때 여진족의 침입을 물리쳐 공을 세우고 절충장군(折衝將軍)으로 승진, 무산진첨절제사에 제수되고,
얼마 뒤 훈련중군·호서수군절도사·호남수군절도사를 역임(1614년)하였는데,
간 데마다 군사들을 사랑하여 신망이 두터웠다.
광해군의 난정을 당하여 9년 동안 은거하고 있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중군에 등용되어
군졸들의 마음을 수습하였다.
외직에 나가 있는 동안 권귀인(權貴人)의 비위를 건드려 파직당하고, 정묘호란 때 다시 중군이 되어 왕을
호종한 공으로 가선대부로 승자, 경상우도절도사 겸 진주목사를 거쳐, 회령도호부사를 지냈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로 있던 그는
보병 1만여명을 이끌고 북진하여 남한산성에 포위당하여 있던 왕을 구하려 하였으나,
광주(廣州) 쌍령(雙嶺)에서 적을 만나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뒤에 왕이 이 소식을 듣고 예관(禮官)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병조판서에 추증하였다.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경기도 광주시 초월면 쌍령리에 정충묘(精忠廟)가 있으며 이곳은 병자호란(丙子胡亂)때 이곳 쌍령리에서
용전 분투하다 전사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민영 (閔英), 안동영장 선세강(宣世綱),
죽성산성 성주 이의배(李義培)등 네 분의 위패를 함께 모신 사당이다.
묘(墓)는 충남 청양군 장평면 미당리 벌터 산31번지에 있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61 조선 허교(許喬) 수옹(壽翁) 유악(維嶽) 21
60 조선 허균(許筠) 21
59 조선 허난설헌(許蘭雪軒) 21 #1
58 조선 허봉(許篈) 21 김귀영
57 조선 허방(許邦) 21
56 조선 허성(許筬) 21
55 조선 허적(許적) 21 양릉군 영사1등
54 조선 허계(許禊) 21 양평군 영사2등
53 조선 허한(許僩) 행오(杏塢) 21
52 조선 허겸(許謙) 파주목사(坡州牧使) 21 파릉군
51 조선 허응(許凝) 21 양원군
50 조선 허목(許穆) 22 문정(文正) 우의정
49 조선 허실(許宲) 22
48 조선 허완(許完) 22 충장(忠莊)
47 조선 허욱(許頊) 좌의정 22 정목(貞穆) 양릉군 좌의정 선조조
12345678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