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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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교(許喬)
ㆍ분류 : 조선  
ㆍ별칭/관직명 :  수옹(壽翁) 유악(維嶽)
ㆍ세수(世數) :  21
허교(許喬)
 
 
 
1567년(명종 22)∼1632년(인조10).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수옹(壽翁) 또는 유악(維嶽)이다.
벼슬은 증대광보국 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겸 영경연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이고 행 통훈대부 포천현감 양주진관 병마절제도위를 지냈다.
미수공이 지은 묘비에 이름은 교이고
자는  수옹 또는 유악이라고도 하며 성은 허씨이다.
고령 원의 증손이며 좌찬성 자의 손자요 증좌찬성 강의 작은 아들이다.
어머니 증정경부인 진주강씨는 전 우의정 숙헌공 귀손의 증손녀이다.
명종22년(정묘1567) 8월21일에 탄생하였다.
어려서 수암 박지화선생에게 수업하였는데 수암선생은 화담 서경덕 선생의 제자이다.
수암 선생은 연세가 80여세였으나 총명이 쇠퇴하지 않았다.
공이 수련하는 방법을 배우기를 청하니 선생이 말하기를 "세상풍속을 등지고
자기 지조만을 지켜 나가는 선비 중에는 간혹 그것을 하는 사람이 있으나
배우는 자가 먼저 힘쓸 일은 아니다." 하고 말하지 않았다.
선조25년엔, 임진왜란이 일어나서 선군자가 협북에 피란중 73세로 작고하여
연천에 돌아와 장사 지냈다.
그 당시 병란이 양호(兩湖)의 서쪽 경계에는 미치지 않았으므로 70여세 된 태부인을 모시고 친척 가솔들의 고아와 과부 백여명을 거느리고서 호우(湖右)의 나그네로 다니다가
정성을 다하여 장례에 쓸 물건을 갖추어 가지고 와서 장사지내니,
보는 사람들이 탄식하기를 "훌륭하다 효자가 어버이 장사지내는 정성이어라" 라고 하였다.
선조31년(1598) 공의 나이 32세였던 그 때에 재상이던 김명원이 그의 행실과 재능을 보고
천거하여 군자감 참봉에 제수 하였다.
때마침 왜적이 이미 물러가자 남북의 관병들이 서울에 집결 하였는데
공이 군량 분배하는 일을 분장 하였고 여러번 전직하여 사섬시와 제용감의 봉사와 직장이 되었으나 호조판서의 미움을 받아 파직되었다.
파직된지 2년에 태부인이 81세로 별세하자 3년상을 마치고 의금부도사에 재배되었다가
선공감 직장으로 전직 되었다.
다음해에 선조가 승하하매 무릇 관곽과 상여에 따르는 모든 일을 맡아보고 초빈이 끝나자
신병으로 한가한 직책인 내재시직장에 재배되어 졸곡 때까지
천신하는 제수물자를 공급하였다.
다음해에 사헌부 감찰의 직함으로 양성현감이 되었는데 고을을 잘 다스렸다.
1년만에 고령현감으로 옮겨지자 양성 백성들이 도당(都堂)에 글을 올려
유임시켜 주기를 애걸하였으나 성사되지 못하였다.
고령에 허위로 소송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물러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법을 밝히어 거짓을 금하는데는 과연 아무가 있다하고 한번 보고 사례하기를 원하였다.
이웃 고을에 살인자가 있었는데 유력자의 도움을 받고 있어 오래동안 의옥이 되었다.
공이 조사관이 되어 양편을 심문하매 살인자가 죄상을 자백하니 그 원수였던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려 사례하였다.
곽재우가 그 소문을 듣고 감탄하기를 후세에 반드시 음덕이 있을 것이다.
광해10년 공의 나이 52세에 거창현감이 되었다.
그때 큰 옥사가 있었는데 초당 허엽(草堂 許曄)은 이미 죽고 그 자손이 아무 죄 없이
연좌되어 사형을 당하게 되었으므로 공이 전대의 구의를 생각하여 서울에 와서
화난을 입은 사람들을 위문하고 주선하여 죽음을 면하게 하고 해도로 유배되도록 하니
그들이 손을 잡고 흐느끼면서 사례하고 그 처자들을 부탁하였다.
거창에 부임한지 3년만에 산음 현감으로 옮겨졌다.
그 고을의 전임 군수는 집권자의 버릇없는 자제였기 때문에 고을 백성들이
괴롭게 여기던 터였으므로 공이 부임하니 고을 사람들이 서로 기뻐하며 말하기를
이제야 다시 옛날 군수의 정치를 보겠구나 하였다.
인조1년(1623)에 공이 산음현을 떠나 집에 와 있었는데 그때에 나라에는 반정의 일이 있어
이원익(李元翼)이 다시 정승이 되니 공이 사사로 찾아보고 말하기를
"공업이 세상을 덮었다 하더라도 청사(淸士)라면 부끄럽게 생각할 것이오" 하니
이원익이 얼굴빛을 고치며 감탄 하면서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동애공(東厓公:허자)의
자손에 이러한 사람이 있었구나 하였다 한다.
인조4년에 계운궁의 상사가 있게되자 존숭의 예를 거행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왕후에게 쓰는 관곽과 상여로 초빈하고 그 제도에 의심이 나자 선왕의 초빈 때에
공작을 맡았던 사람이 아무라고 생각하여 공을 불러 들여 물었으나 사양할 뿐
대답하지 않고 갔다.
12년 겨울 인조왕비 조씨 장사 때에 공이 포천 현감이었는데
교량과 소사(小祀)에 쓸 제물을 제공 하였다.
오래전부터 있었던 병이 위독하여져서 그해 12월 2일에 관사에서 별세하니 수가 66세였다.
병중에 나에게 경계하기를 포의였던 나로서 염습과 장례가 선인보다 못해야 만족하니
조심껏 내 뜻을 받아 이미 죽은 사람의 마음을 어기지 말라 하였다.
다음해 2월에 연천 선산 북쪽에 장사지냈는데 이문충공이 조곡하기를
"종족을 지성으로 도와주고 태만치 않음은 그의 인자함이며 칠읍을 다스렸으나
염장할 물건이 없으니 아! 그 청빈함이여!
위로는 어진 선조의 뜻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훌륭한 자녀 질이 있어서
아무 걱정없이 무덤으로 돌아갔으니 이만하면 만족하다" 하였다.
공이 칠읍을 다스렸으나 하나의 재산도 모아 놓은 것 없이 항상 거문고를 탔는데
희귀한 음악과 옛스런 곡조를 즐겨 하였다.
어떤 때는 거문고를 어루만지며 탄식하기를 평생동안 고인과 같기를 기약하였는데
늙도록 알아줄 사람 하나도 없이 하찮은 녹을 구해 뭇사람들처럼 쫓았으니
일생에 매우 부끄럽다 하였다.
그리고 자제들을 가르칠 때면 반드시 말하기를
이로움을 보거든 수치스러울 것을 생각하고 의로운 말을 듣거든 반드시 힘쓸 것이며
스스로 욕되게 남에게 아첨하지 말라 하였다.
어느때고 박지화선생의 옛 저택을 지날 때면 반드시 말에서 내리면서 말하기를
"젊었을 때에 추종하며 공경하던 곳인데 늙었다 하여 감히 잊을 수 없다" 하였다.
노예들 중에 죽는 자가 있으면 반드시 옷을 벗어서라도 관을 갖추어
조심스럽게 묻어 주면서 말하기를 노력한 수고의 보답으로는 부족하다 하였다.
금천현감으로 있을 때에 종형의 자녀가 죽어서 강상에 출빈 한적이 있었는데
내가 오랜 병 때문에 초빈에 참여치 못하였다.
그런데 마침 이웃에 손님이 있어 맞이 하여 서로 이야기하다가 돌아왔는데 책망하기를
온 집안에 곡읍하는 소리가 초상때와 같은데 부득이한 일이 아니면
이웃에 가지 않는 것이다.
내가 명을 들으매 마음이 두려워서 오늘날 늙어 죽을 나이에 이르도록 그 훈계가 귀에
역력하여 감히 잊지를 못한다.
부인은 나주림씨로서  장인은 예조정랑 제이다.
형제 5인중 목(穆)이 장남이다.
공께서 별세한지 벌써 40여년이 되었다.
목이 우의정이 되므로써 공의 작을 추은하여 영의정으로 부인은 정경부인으로 증하고
차남은 의니 송화 현감이요 또 차는서니 영월군수요 또 차는 달과 순이다.
순은 무과급제 하였으나 입사하지 못하고 별세 하였고 딸은 선공감역 권복길의 처이다.
목은 훤과 함과 도를 낳았는데 함은 안협 현감이요 두 사위는 윤승리와 정기윤인데
기윤은 내자시 직장이다.
의는 별자 삼인이 있었으나 부가 사망하자 두 아들은 연사하고 중자 흡은 영광 처가 곳으로
가서 살고 서는 공과 충과 호와 숙을 낳으니 공은 무과로  영남우절도우후요
호는 공릉 참봉이며 두 사위는 심근과 조태윤이다.
권복길의 아들 확은 또한 무과로 출신한 자이다.
묘(墓)는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은거당 선영에 있고
묘비명은 아들 미수공이 직접 지었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61 조선 허교(許喬) 수옹(壽翁) 유악(維嶽) 21
60 조선 허균(許筠) 21
59 조선 허난설헌(許蘭雪軒) 21 #1
58 조선 허봉(許篈) 21 김귀영
57 조선 허방(許邦) 21
56 조선 허성(許筬) 21
55 조선 허적(許적) 21 양릉군 영사1등
54 조선 허계(許禊) 21 양평군 영사2등
53 조선 허한(許僩) 행오(杏塢) 21
52 조선 허겸(許謙) 파주목사(坡州牧使) 21 파릉군
51 조선 허응(許凝) 21 양원군
50 조선 허목(許穆) 22 문정(文正) 우의정
49 조선 허실(許宲) 22
48 조선 허완(許完) 22 충장(忠莊)
47 조선 허욱(許頊) 좌의정 22 정목(貞穆) 양릉군 좌의정 선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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