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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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방(許邦)
ㆍ분류 : 조선  
ㆍ세수(世數) :  21
허방(許邦)
 
낭천현감 허방(狼川縣監 許邦)은 시조로부터 21세손이다.
? ~ 1459년(세조5).
자는 중안(仲安)이고 호는 석헌(石軒)이며 벼슬은 낭천현감(狼川縣監)이다.
동주사공 허정(東州使公 許程)의 10세손이다.
행장에 대략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공은 젊을 때로부터 뜻이 드높아  큰 절개가 있었다.
집안에 있을 때에는 효도하고 우애한다고 이름났고 관청에 있을 때에는 청백함으로 유명하였다.
을해년(1455년) 단종이 임금의 지위를 사양하던 날에 공은 낭천현감으로 있었는데
마침내 벼슬을 버리고 영월(寧越)로 돌아왔으며 장자인 공주판관 허윤공(公州判官 許允恭)을 보내어
금성대군(錦城大君)을 순흥(順興)으로 따라가 함께 도와 군주로 추대할 것을 도모하였다. 
공의 장손인 허지(許智)는 보령현감(保寧縣監)으로 있다가 관직을 버리고 달려가던 도중에
부친이 병으로 별세하자 유언을 따라 수레를 메고 와서 영월에 장례하였다. 
단종이 청령포(淸泠浦)에 있으면서 음식을 구하기가 어려웠는데
호장 엄흥도(戶長 嚴興道)가 이것을 걱정하자 공은 박에 매달아 밥을 전달하는
계책을 가르쳐주니 영월에서 말하기를 "허낭천(許狼川)이 아니었으면 엄호장(嚴戶長)의 충성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였다. 
병자년(1456) 단종이 승하하자 공은 급히 관곽(棺槨)과 염습하는 도구를 갖추어
엄호장(嚴戶長)과 함께 침실로 들어가 시신을 거두어 염하고 엎드려 곡(哭)한 다음
호장으로 하여금 관을 지게 하고 뒤따라 가서 을지산(乙旨山) 서쪽 기슭에 올라가
땅을 파서 흙을 덮고 떠나갔다.
또한 태백산에 은둔하여 종신토록 나오지 않았다. 
묘는 장릉(莊陵)의 서쪽 진촌(津村) 뒤 임좌(壬坐)의 산에 있다.
호장 엄흥도
(戶長 嚴興道) :
 조선 전기의 지사(志士). 시호는 충의(忠毅).
영월(寧越)의 호장(戶長)으로 있을때, 귀양살이하던 단종(端宗)이
세조에 의하여 죽자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거두려 하지 않는데도,
관까지 준비하여 장례를 치르고는 몸을 숨겼다.
영조 때 충의(忠義)를 기리는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뒤에 공조참판에 추증되고, 영월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되었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61 조선 허교(許喬) 수옹(壽翁) 유악(維嶽) 21
60 조선 허균(許筠) 21
59 조선 허난설헌(許蘭雪軒) 21 #1
58 조선 허봉(許篈) 21 김귀영
57 조선 허방(許邦) 21
56 조선 허성(許筬) 21
55 조선 허적(許적) 21 양릉군 영사1등
54 조선 허계(許禊) 21 양평군 영사2등
53 조선 허한(許僩) 행오(杏塢) 21
52 조선 허겸(許謙) 파주목사(坡州牧使) 21 파릉군
51 조선 허응(許凝) 21 양원군
50 조선 허목(許穆) 22 문정(文正) 우의정
49 조선 허실(許宲) 22
48 조선 허완(許完) 22 충장(忠莊)
47 조선 허욱(許頊) 좌의정 22 정목(貞穆) 양릉군 좌의정 선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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