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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조선 | ||
ㆍ세수(世數) : 22 |
1543년(중종 38)∼1623년(인조1).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시조로부터 22세손이며 충정공 종(琮)의 현손이다. 자는 경회(景晦). 아버지는 결성현감 운(雲)이며, 어머니는 감찰 이구정(李龜楨)의 딸이고 배위는 영월엄씨(寧越嚴氏)이다. 1579년(선조 12) 생원이 되고, 1583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감찰·형조좌랑·성균관직강·춘추관편수관을 역임하였다. 이어 경상·평안도도사가 되었을 때 의령현감으로 있던 정인홍(鄭仁弘)이 영송(迎送)에 무례하므로 그가 그 주관한 아전을 벌주니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뒤 기축옥사 때 정여립(鄭汝立)과 관련이 있다 하여 감옥에 갇혔다가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평안도도사로 임금을 모시고 의주로 갔는데 왕을 호종한 공으로 절도사가 되었다. 성을 나누어 지켰는데 그는 왕실의 신주(神主)를 관리하였으며, 얼마 뒤 정주목사가 되었다. 1615년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임명되었다가 나이가 70이라 하여 체차되었고, 광해군의 폐모론이 일어나자 벼슬을 멀리하였다. 임진왜란의 공으로 공신에 녹훈되었다가 인조반정 후 삭훈되었다. 묘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 산93-2에 있고 묘갈은 우의정 계곡(谿谷) 장유(張維)가 지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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