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천허씨대종회 홈페이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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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후(許厚)
ㆍ분류 : 조선  
ㆍ세수(世數) :  22
허후(許厚)
22세손 / 문장가 (돈계집) / 서화가 / 서예가 (전서)  
 
 
1588년(선조 21)∼1661년(현종 2).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시조로부터 22세손이다.
자는 중경(重卿), 호는 관설(觀雪)·
돈계(遯溪)·일휴(逸休). 동애공(東厓公)허자(許磁)의 증손자이고
양천현감 동주공(桐洲公)허량(許亮)의 아들이며, 우의정 목(穆)의 종형(從兄)이다.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이다.
모친은 안동권씨(安東權氏)이며 배위는 전주이씨와 양주조씨 두분이다.
1623년(인조 1) 이원익(李元翼)의 천거로 내시교관(內侍敎官)이 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 때 의병장 김창일(金昌一)을 도와 공을 세웠고,
난이 끝난 뒤 제용감직장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사도시주부를 거쳐 지평현감이 되었는데,
내노(內奴)가 인폐를 끼친 바 있어 이들을 엄중히 다스려 숙폐를 일소하였다.
그러나 남살(濫殺)한 죄과로 투옥되었는데, 현민들이 호소하여 풀려나
치악산 돈계 시냇가에 소암(素庵)이라는 정자를 짓고 기거하였다.
1637년 태묘영(太廟令)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다가 그 뒤 의성현령, 형조·공조의 좌랑,
은산현감을 역임하고 1644년 세자익위사의 좌익위가 되었다.
인조가 죽자 원주의 관설로 돌아가니 이것으로 호를 정하였다.
1654년(효종 5)선공감부정에 이어 지평이 되고, 곧 장령에 발탁되었다.
1658년 회양도호부사(淮陽都護府使)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으며,
효종의 장례를 당하여 장악원정이 되었다.
이때 자의대비(慈懿大妃:仁祖繼妃)의 복상문제로 예송(禮訟)이 일어나자,
서인의 기년설(朞年說:1년상)에 반대하여 3년상을 주장하였다.
글씨에 능하며 특히 전서(篆書) ·주서(籒書)에 뛰어났다.
원주 유생들이 선생의 학덕을 기려 도천서원(陶川書院)에 제향되었다.
1661년(현종2) 2월 10일 74세로 별세 하였다.
저서 : 『돈계집(遯溪集)』이 있다.

 
〈是非吟〉 - 許厚 옳고 그름을 읊다
 
是非眞是是還非 옳음이 참옳음이 아니고 옳음이 때로는 그름일 수도 있으니
不必隨波强是非 물결 따라 억지로 옳고 그름을 가릴 것도 없는 일
却忘是非高着眼 옳고 그름을 잊고 눈을 높은 곳에 두어야
方能是是又非非 비로소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할 수 있다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46 조선 허진(許晉) 22
45 조선 허흔(許昕) [1] 22
44 조선 허적(許積) 영의정 22 숙헌(肅憲) 영의정
43 조선 허후(許厚) 22
42 조선 허선(許選) 22 양원군 영사2등
41 조선 허윤공(許允恭) [3] 공주판관(公州判官) 22
40 조선 허안(許晏) 22세
39 조선 허휘(許徽) 23 익정(瀷靖)
38 조선 허대인(許大仁) 23
37 조선 허견(許堅) 23
36 조선 허흡(許흡)-보 23 양은군
35 조선 허진(許瑱) 23 파춘군
34 조선 허지(許智) 보령현감(保寧縣監) 23
33 조선 허옥(許沃) 24
32 조선 허익(許瀷)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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