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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조선 | ||
ㆍ세수(世數) : 22 | ||
ㆍ봉군(封君) : 양원군 | ||
ㆍ공신(功臣) : 영사2등 |
22세손 / ![]() 21世 허계(許계)의 초상은 경기도 용인군 원삼면 맹리 능안마을 양천허씨 종중에 그의 아들 허선(許選)의 초상과 함께 전한다. 허계·허선 부자가 큰 공을 세운 뒤 인조(仁祖)의 어명으로 인각되어 공신각(功臣角)에 봉안되었던 공신상(功臣像)이다. 『양천허씨유사(陽川許氏遺事)』 에 의하면 인조 6년(1628)에 광해군의 외척이 되는 유효립 (柳孝立)이 제천에서 모의하여 인조를 몰아내려는 음모를 꾀하 였다. 이때 죽산부사로 있던 허적(許적)이 역모를 알아차려 조정에 고변하였고, 허계 부자는 음모자를 절박하는 공을 세웠다. 이때 가 무진년(戊辰年)이었으므로 무진위훈공신(戊辰爲勳功臣)으로 불렀으며, 영사공신(寧社功臣)에 책록하였다. 이 초상이 그려졌 을 당시 허계는 65세였고, 아들 허선은 37세였다. 허계의 초상 상단에는「崇禎元年 戊辰爲勳圖」라는 명문(銘文)이 있다. 좌안 7분면(左顔七分面)의 전신교의좌상(全身交倚座像)이며 학(鶴) 흉배의 청포단령(靑袍團領)을 입은 공수(拱手)의 취세이다. 오사모(烏紗帽)부위가 약간 손상되었을 뿐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허계(1564년~1649년)의 자(字)는 자길(字吉), 벼슬은 의정부 좌찬성(左贊成)에 올랐고 양평군(楊平君)에 봉해졌다. **공신상(功臣像)은 왕명에 의하여 그려지는데 이를 관장하는 기관을 조선 태조 때에는 공신도감(功臣都監)이라고 했다가 태종 때에 충훈사(忠勳司)로 고쳤으며, 세조 초에는 부(府)로 승격시켜 충훈부(忠勳府)라 하였다. 공신상은 대개 두 본을 그려서 1본은 공신각(功臣閣) 또는 기공각(紀功閣)에 봉안하고 1본은 종가(宗家)에 하사하여 가묘(家廟)나 영당(影堂)에 봉안케 했다.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24호 *지정년월일 : 1992.10.12 *시대 : 조선 인조6년(1628) *소재지 : 용인시 원삼면 맹2리 *규모 : 견본설채(絹本設彩) *화폭 :173×103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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