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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필(許佖)
ㆍ분류 : 조선  
ㆍ  키워드   :  #1 #2
ㆍ별칭/관직명 :  연객(烟客)
ㆍ세수(世數) :  28
허필(許佖)
28세손 / 호는 연객(烟客)·초선(草禪)·구도(舊濤) / 문장가 / 서화가 /학자
저서 : 선사창수록(仙槎唱酬錄), 연객유고(烟客遺稿)
작품 :  국화도(菊花圖), 지두산수
 

1708년(숙종 34)∼1768년(영조44). 조선 후기의 학자·서화가.

시조로부터 28세손이며 지평 열(悅)의 증손이고 
충정공 종(琮)의 10세손이다. 자는 여정(汝正), 호는 연객(烟客)·초선(草禪)·구도(舊濤).

1735년(영조 11)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관직에 나가지 않고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하여 당시에 삼절(三絶)로 불리웠다. 혜환 이용휴(李用休)가 쓴 허필의 지명(誌銘)에는 청빈하고 소탈한 성격과 문학과 고예술품(古藝術品)을 사랑하는 태도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또한 모든 서체(書體)에 능통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전서(篆書)와 예서(隷書)에 뛰어났다고 하였다.
 
산수·영모 등의 그림을 그렸으며 산수화는 명대(明代) 심주(沈周)의 양식을 따랐다고 한다.
지금 전하는 몇 폭의 그림들은 명대 오파(吳派) 또는 미가(米家)산수양식의 특징을 보이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남종화라고 할 수 있다.
 
저서 : [선사창수록(仙槎唱酬錄)]과
[연객유고(烟客遺稿)]가 있다.
그림 : [국화도] . [지두산수] 가 있다.
 
 
   
허필의 그림. 왼쪽으로부터 국화도(서울대박물관 소장), 지두화, 두보시의도(杜甫詩意圖)
 
지두화(指頭畵)
붓 대신 손가락(손톱,손바닦)으로 먹을 찍어서 그린 그림.지화(指畵)·지묵(指墨)이라고도 한다. 중국 청대(淸代)의 화가 고기패(高其佩)가 기법으로서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이 시초이다. 일반 모필과 비교하여 부드럽고 유려한 선의 맛은 덜하고 상대적으로 둔탁한 것이지만 날카롭고 둔중한  필선은 모필의 그것보다  훨씬 강한 표현력을 보여준다.
 
  
 

두보시의도(杜甫詩意圖), 허필
 
이그림은 그림의 제목과 같이 두보(712년-770년)의 시구를 소재로 이른 봄의 고요한 초정(草亭)의 풍경을 묘사하였다. 그림의 왼쪽에 쓰인 시와 허필(許佖)의 제(題)는 다음과 같다.
"讀杜家 春日 啼修竹裡 山家吠犬白雲間之句 參之草禪 , 帖 不覺心期 然”
두보의 시중에서 “봄철이 되어 대숲에 꾀꼬리 울고 신선의 집에는 흰 구름 사이에 개가 짖는다.”는 구절을 읽고 나는 이를 참작하여 화첩에 묵희하였는데 이렇게 마음이 머뭇거리고 설레일 줄은 알지 못했다.
(수묵담채, 37.5 X 24.3cm,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酬仙차令韻(수선차령운) - 烟客(연객) 許佖(허필)
친구 시를 화답함  -  허필
 
湖水蓮花發  (호수연화발)  연꽃 곱게 호수 위에 피어 있는데
太守愛蓮花  (태수애연화)  우리 원님 꽃 구경을 좋아 하느니
乘舟莫深人  (승주막심인)  배를 타고 연못 깊이 들지를 마라
恐傷蓮花多  (공상연화다)  고운 연꽃 다 떨어질까 염려로구나
(명시전서, 명문당)

 
 
 

《자료 글 #1》
 
 
ⓒ연합뉴스
고려대 도서관에서 발굴돼 공개된 조선시대 문인 허필의 시문집 `연객시고'(烟客詩稿) 필사본. 허필은 18세기 조선시대에 시ㆍ서ㆍ화(詩書畵)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삼절(三絶)로 불렸다.//문화부 기사참조/문화/ 2004.4 .12 (서울=연합뉴스)
 
 
《자료 글 #2》
허필 선조의 자료를 찾던 중 관동팔경 8점의 작품을 발견했습니다. 고마시닷컴 - 링크해 드립니다. 〈대종회〉
 
자료 출처 : 고마시(Gomasi) http://gomasi.com/tc/entry/gyum2?category=3
'엄친아' 허필과 함께 떠나는 관동팔경 여행
 
그림도 잘 그리면서, 글도 잘 쓰는 작가가 있다면? 요즘 말로 ‘엄마 친구 아들’이라 불릴법한 작가가 조선 시대 후기에 등장했다. 그의 이름은 허필로 26세의 나이에 관직으로 가는 첫 고비인 진사 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입학하면서 처음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하지만 성균관에 입학한 허필은 정작 벼슬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는 관직 진출을 포기한 대신 친구와 어울려 전국의 명소를 돌면서 시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것에 열중했다. 이에 사람들은 허필과 그의 절친한 친구인 강세황을 더불어 시와 글 그리고 그림에 모두 능통한 ‘시서화삼재’라고 일컬으며 칭송했다.

그가 성균관에 머물 당시에 함께 머물던 유생들은 허필의 그림이 담긴 부채가 아니면 손에 잡지 않았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또한 그는 ‘삼재’라는 명성에 걸맞게 자신의 그림에 명시를 써넣는 ‘선비 화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의 그림은 조선 후기에 유행이었던 남종화풍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명소의 풍경을 그리는 산수화와 새나 짐승을 소재로 한 영모화를 즐겨 그렸던 것으로 알려진다. 오늘 소개하는 그림인 <관동팔경>은 허필이 강원도 일대에서 명승지로 유명한 장소를 여행하면서 화폭에 담아낸 그림이다. 조선시대 많은 화가들이 ‘관동팔경’을 그림에 담았지만 허필의 작품은 섬세한 풍경 묘사와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면 느낀 바를 정리한 시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금부터 허필이 바라본 관동팔경의 아름다움을 그의 그림과 함께 떠나보자.
 

관동팔경 첫번째 - 고성의 삼일포
신라시대에 영랑ㆍ술랑ㆍ남석랑ㆍ안상랑 등의 4국선이 뱃놀이를 나왔다가 경치에 매료되어 3일 동안 돌아가는 것을 잊었다고 해서 ‘삼일포’라 불리게 되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호수이다. 호수 북서쪽과 남쪽에 거암과 기암괴석이 즐비하게 솟아있는 풍경이 이색적인 명소이다.
   
허필의 관동팔경도병. 왼쪽으로부터 삼일포, 총석정, 경포대, 청간정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관동팔경 두번째 - 통천의 총석정
동해로 돌출된 지역에 있는 정자로, 이 정자에 오르면 바다 속에서 육각형의 구리빛 현무암 돌기둥이 솟아있는 이색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관동팔경 세번째 - 강릉의 경포대
경포대는 강릉의 경포호수 북쪽에 건립된 정자를 일컫는다. 이곳에는 경포대를 방문한 조선 숙종의 어제시를 포함해 당대 명문장가들의 문장과 시가 즐비하게 걸려있다. 경포대의 현판은 율곡이이가 8세의 나이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경포대부>가 판각되어 걸려있다. 
 
관동팔경 네번째 - 간성의 청간정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청간천과 바다가 만나는 언덕 위에 지어진 작은 정자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풍경은 특히 아침의 일출과 저녁의 낙조가 아름다워서 예로부터 많은 시인과 화가들이 작품 속에 다루었다. 갑신정변때 한 차례 불타서 없어진 것을 지방민들이 재건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지방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관동팔경 다섯번째 - 울진의 망양정
가까운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망해정’과 비교해 너른 바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는 것이 바로 ‘망양정’의 색다른 매력이다. 허필은 자신이 그린 <관동팔경>에서 망양정에 올라 먼 바다를 바라본 풍경을 그림 속에 담았다. 
     
허필의 관동팔경도병. 왼쪽으로부터 망양정, 죽서루, 낙산사, 월송정 (선문대학교박물관 소장)
 
관동팔경 여섯번째 - 삼척의 죽서루
삼척시의 서쪽에 흐르는 오십천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끝에 건설된 정자이다. 창건 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지만, <동안거사집>에 1922년에 고려시대의 무인 이승휴가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1922년 이전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남아있는 죽서루는 조선 초기의 건축물이지만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치면서 원형이 훼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관동팔경 일곱번째 - 양양의 낙산사
관동팔경에 포함된 유일한 절로 3대 관음기도도량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5년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주요 전각이 소실되는 비운을 겪었다.
 
관동팔경 여덞번째 - 평해의 월송정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이 월송정에 묵으며 글을 쓰고 무예를 수련했다. 일제시대 일본군이 철거한 것을 광복 후 복귀한 것이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요약
조선 후기의 학자·서화가. 문장·서예·그림에 모두 뛰어났고 문학과 고예술에도 조예가 깊었다. 주로 남종화풍의 산수화와 영모화를 그렸다.
 
본관  양천(陽川) 
호  연객(煙客)·초선(草禪)·구도(舊濤) 
별칭  자 여정(汝正) 
활동분야  시·서·화 
주요저서  《선사창수록(仙?唱酬錄)》 《연객유고(煙客遺稿)》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여정(汝正)이며, 호는 연객(煙客)·초선(草禪)·구도(舊濤)이다. 지평(持平)을 지낸 허열(許悅)의 증손자로, 1709년(숙종 39)에 태어나 1735년(영조 11) 진사시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관직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과 시·서·화에 전념하여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그가 성균관에 머물 때 유생들이 그의 그림이 그려진 부채가 아니면 손에 잡지 않을 정도로 그림이 뛰어났고, 문장 역시 유생들 가운데 으뜸이었다고 한다. 또 청빈하면서도 소탈한 성품의 소유자로 문학과 고예술에 조예가 깊었고, 모든 서체에 두루 능통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전서(篆書)와 예서(隸書)에 뛰어났다.
주로 산수화(山水畵)와 영모화(翎毛畵)를 그렸고, 화법은 명(明)나라 심주(沈周)로부터 비롯되는 오파(吳派)와 미가(米家)의 양식을 따라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문인화인 남종화풍을 따랐다. 오늘날 몇 폭의 그림이 남아 있고, 저서로 《선사창수록(仙?唱酬錄)》 《연객유고(煙客遺稿)》가 있다.
 

 
번호     글 제 목 별칭/관직명 세수(世數) 시호(諡號) 봉군(封君) 상신(相臣) 공신(功臣)   청백리   호당(湖堂)   키워드  
16 조선 허필(許佖) 연객(烟客) 28 #1 #2
15 조선 허임극(許任克) 인수(仁叟) 28
14 조선 허찬(許巑) 소와공(素窩公) 29
13 조선 허전(許傳) 숭록대부(崇祿大夫) 30 문헌(文憲) 성재집
12 조선 허계(許棨) 이숙(而肅) 30 효민(孝敏)
11 근·현대 허격(許格) 신암(新庵) 30
10 조선 허련(許鍊) 소치(小癡) 31
9 조선 허헌(許憲) 통사랑(通仕郞) 31
8 근·현대 허웅(許雄) 눈뫼 31 국민훈장
7 조선 허이(許邇) 성언(聖言) 매강(梅岡) 31 성균진사
6 근·현대 허형(許瀅) 미산(米山) 32
5 근·현대 허건(許楗) 남농(南農) 33
4 근·현대 허백련(許百鍊) 춘설헌(春雪軒) 35
3 조선 허정(許檉) 택지(澤之) 미확인
2 조선 허쟁 탁보(卓甫) 미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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