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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고려 | ||
ㆍ별칭/관직명 : 대제학(大堤學) | ||
ㆍ세수(世數) : 11 |
11세손 / 대제학(大堤學) 대제학공 허부(大提학公 許富)는 시조로부터 11세손이다. 공은 품성이 중후하며 문무(文武)를 겸비하여 지혜롭고 영민하였다. 고려 충렬왕(1274년~1308년)때 문을과(文乙科)에 급제하고 잡단과 사헌부(司憲府)의 종5품(從五品) 벼슬에 계속 승진되어 여러 관직을 역임한 후 동면도감(東面都監)을 거쳐 제관전서(制官典書)를 지냈다. 예문관대제학(藝文館大提學)에 오르고 지춘추관사 상호군(知春秋館事 上護軍)을 지냈다.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허부(許富)는 충숙왕대에 우대언(右代言)으로 거자(擧子)를 맡아 정을보(鄭乙輔)등을 시취(試取)하였는데 허부(許富)는 시문(詩文) 전부를 읽지 못하고 오직 방두(枋頭)에 있는 1인만 뽑고 나머지는 기명순(記名順)의 선후(先後)로써 차례를 정하였다. 방금(防禁)이 엄격하지 않아 검열(檢閱) 유세흥(劉世興)이 자물쇠를 채운 시험장에 들어가 고하(高下)를 품제(品第)하였다. 수찬(修撰) 정이(鄭怡)가 가만히 봉쇄(封鎖)를 찢으니 국가고시로서의 체통(體統)을 잃게 되었다. 벼슬이 선부전서(選部典書)에 이르렀는데 일찌기 장령(掌令) 성을신(成乙臣) 등과 더불어 말하기를 장령(掌令) 박원계(朴元桂)가 남의 뇌포(賂布) 1백필을 받았다 하거늘 박원계가 왕에게 호소하므로 왕이 채하중(蔡河中)에게 명하여 국문하니 허부(許富)가 말하기를 판사(判事) 이인길(李仁吉)에게 들었다고 하고 이인길은 그런말을 한적이 없다고 서로 버티고 불복함에 채하중이 아뢰기를 거짓 망령되이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열전 허공편 가운데서-) 세고(世稿)에 공은 자손을 가르침에 가첩(家牒)에 "세업충효(世業忠孝)하고 여력문장(餘力文章)하라" 하였다. 손자(孫子)인 고송공(孤松公) 허도(許衜)가 가첩 말미에 쓰기를 '이 가르침은 공자님의 유훈(遺訓)에서 받으심이니 선조유유(先祖遺諭)를 받들어 후손들에게 전하노라' 하였다. 공은 허공(許珙)의 다섯째 아드님으로 부인 교하노씨(交河盧氏) 사이에 6남2녀를 두었는데 맏이는 직제학(直提學) 허신(許信)이고, 둘째는 양천군 허순(陽川君 許順), 여섯째 허완(許完)은 정당문학(政堂文學)으로 그 후손들은 여러곳으로 흩어져 살았고 셋째,넷째,다섯째는 후손이 없다. ![]() 위치 :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장곡리. 11세대제학공 허부(許富), 12세 직제학공 허신(許信) 13세 좌찬성 허도(許衜), 14세 이조판서 허균(許稛)등 네 분의 제단. *잡단(雜端) : 어사대(御史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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