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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분류 : 서울 |
![]() 기해기사계첩 경현당석연도(己亥耆社契帖 景賢堂錫宴圖) 허숙(許璹) (17世紀 後半 ∼18世紀 初) 外 朝鮮 1719∼1720年 비단·彩色 44.0×67.7 . 보물929호 소재지 : 서울 용산구 용산동 6가 국립중앙박물관 가로 36㎝, 세로 5㎝로 허숙,장태흥,김진여 등이 그림을 그리고, 이의방이 글씨를 썼다. 숙종 때에 12부를 만들었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3부이다. 그림 속 궁궐은 경희궁의 편전인 경현당(景賢堂). 여기에 보령(寶齡) 쉰아홉이 된 숙종 임금이 국가원로인 기로 10명을 초청해 잔치를 벌였다. 그림제목의 ‘석연(錫宴)’은 임금이 신하를 위해 베푸는 잔치라는 뜻이다. 잔치는 1719년(숙종 45년) 음력 4월 열여드레로 아침 아홉시 무렵에 열렸다. 참석자는 모두 186명에 이른다. ![]() 이 화첩에 그려진 반신상의 초상화는 정장관복의 차림으로 18세기 초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사(耆社)란 70세가 넘는 정이품(正二品) 이상의중신(重臣)들을 우대하는 뜻에서 만든 모임을 말하며, 이 작품은 숙종 45년(1719) 4월 17, 18일에 있었던 기사계회(耆社契會)를 기념하여 만든 계첩(契帖)이다. 총 25면 50페이지로 되어 있는 이 계첩에는 서문, 숙종의 발문, 계회연의 주요 장면을 그린 행사도, 10명의 기신(耆臣) 초상(肖像)과 연회를 기리는 기신들의 자필(自筆) 축시(祝詩) 등이 실려 있다. 여기에 소개된 그림은 5폭의 행사도 가운데 경덕궁(慶德宮: 慶熙宮의 이전 명칭)내 경현당(景賢堂)에서 베풀어진 연회장면을 그린것이다. 산수 배경과 계회 장면의 비중이 비슷했던 조선 초기 축(軸) 형식의 계회도와는 달리, 후기에 이르면 철저히 계회장면과 인물만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는 계첩이 유행하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서문에 의하면 기사계첩은 모두 12부를 완성하여 1부는 기소(耆所)에서 보관하고 나머지 11부는 11명의 기신이 1부씩 나누어 가졌다고 하는데, 현재는 이 계첩등 3부만이 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