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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남 기념물 제32호] 달천정(達川亭)
ㆍ분류 : 경상  
달천정(達川亭)
자료출처 :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이자 사당이다. 북면 외감리의 북쪽에 위치한 새터마을 입구에 있으며 대문채인 방해문은 평삼문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중앙에 대문이 달려 있고, 좌우는 화장실과 관리인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디지털창원문화대전  

달천정(達川亭)
지역  경남 창원시 북면 외감리 866 
성격   정자|사당
양식   목조와가
건립시기   1931년 4월 23일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1.5칸
소유자   달천계
관리자   달천계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이자 사당.

[개설]
달천정(達川亭)은 1931년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을 추모하기 위해 달천회에서 허목의 유지 근처에 건립한 정자이자 사당이다. 허목은 조선 숙종 때의 문신이자 학자로,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다. 달천회는 허목을 기리기 위해 창원을 중심으로 인근의 유림들이 결성한 모임이며, 현재는 달천계라는 명칭의 법인으로 등록 운영되고 있다.

[위치]
달천정은 원래 경상남도 창원시 상남동에 있던 양반집을 이건하여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북면 외감리의 북쪽에 위치한 새터마을 입구에 있다.

[형태]
본당인 달천정과 대문채에 해당하는 방해문(放海門)이 나란하게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방향은 동향이다. 정면 4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우진각 지붕이다. 평면 형태는 가운데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이 있는 중당협실형이다. 동쪽 방에는 허목의 위패를 모신 감실을 있고, 대청에는 영정이 모셔져 있다.
건물 형식은 대청 부분은 이익공(二翼栱)으로 처리하였고, 온돌방 부분에는 장여 수장으로 처리하였다. 대문채인 방해문은 평삼문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중앙에 대문이 달려 있고, 좌우는 화장실과 관리인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황]
달천정에서는 매년 허목의 기일인 음력 4월 5일 채례(菜禮)을 거행하고 있다. 근처에 달천구천(達川龜泉)이 있는데, 우물 안에는 허목이 직접 조각하여 넣었다는 거북 형상의 돌이 있다. 우물가에는 허목이 직접 심었다는 매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달천정에 딸린 위토답(位土畓)은 약 6,611.6~9,917.4㎡라고 한다.

 
달천정 문정공미수허선생유적비 / 2008년 달천계원들이 미수 선생의 유적임을 알리기 위해 창원시의 후원을 받아 세운 비석 ⓒ디지털창원문화대전

[의의와 평가]
달천정은 허목이 사용한 정자를 회고하여 정자로 명하였지만, 현재 주된 기능은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에 해당한다. 무엇보다도 300여 년이 지나서도 스승을 기리는 후학들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좋은 예라 하겠다.
 
[참고문헌]
•  김종하, 『창원군지』(국제신보출판사, 1962)
•  『창원향교지』(창원향교, 2004) 
 

 

[자료]
미수 선생의 자취를 찾아서   
경상남도 창원시 북면 외감리 
-  배상현 

 
넓은 들에 일렁이는 곡식들은 지난 여름 농부의 땀방울을 떠올리게 한다. 6월이었던가? 한 아주머니가 긴 논배미에 매달려 두렁을 치고 있던 것이. 마을 뒤편은 큰 산이 병풍처럼 드리워져 있고, 산맥은 남으로 북으로 달려서 마산과 함안에 잇닿아 있다. 산은 창원의 주산 천주산이다. 그 앞으로 넓은 들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곳이 외감(外甘)들이다.
 
아름다운 자연에는 인물이 깃든다 하였던가. 산이 좋고 물이 좋고 들이 좋은 이곳에서 필자가 미수(眉叟) 허목(許穆) 선생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이런 것을 두고 가경(佳景) 명승(名勝)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하는가 보다. 마을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 보면 누구든 미수 선생을 알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어제 일처럼 전해 준다.
 
예부터 온 동네 사람이 먹었다는 우물은 달천구천(達川龜泉)이라 불리는데, 이곳에 미수 선생이 거북돌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그 위에는 달천정(達川亭)이 있어 매년 음력 4월 5일 그를 추모하는 제를 지내 오고 있다. 샘이 육신의 식수원이라면 계곡에는 정신을 맑게 할 약수가 흐르며, 더 많은 미수선생의 이야기들이 전해진다.
 
그렇다면 이곳에 미수 선생의 자취가 남게 된 연유는 무엇일까? 최근 이곳 달천계곡에는 반갑게도 ‘달천정미수허선생유적비(達川亭眉叟許先生遺蹟碑)’가 세워졌다. 비문을 읽노라면 미수 선생이 창원 지역에 머물게 된 연유를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다.
 
미수 허목 선생은 병자호란을 겪은 직후인 1637년부터 1646년까지 10년 동안 경상남도의 의령과 창원, 사천 등지에 머물러 그 자취를 남겼다. 창원에는 선대의 전장(田莊)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선생은 선비의 신분으로 쉬지 않고 경사(經史)를 읽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는데, 때때로 원근의 산수를 찾아 참된 정기를 길렀다는 것이다. 어림잡아 370여 년 전의 일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을에서 약 1㎞를 오르면 달천동 계곡에 이르는데 형형색색의 나무들이 울창하다. 숲 밑으로 제법 물길이 큰 계곡이 뻗쳐 있다. 바위에는 ‘달천동(達川洞)’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 외에도 바위 곳곳에 새겨진 글귀들이 보인다. 대부분 선생을 기억하는 인사들이 모여 시회(詩會)를 열거나 선생의 언행을 추억해 온 모임의 흔적들이다.
 
허목 선생은 159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양천, 자는 문보(文父), 호는 미수(眉叟)이다. 그는 한강 정구(鄭逑)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는데, 그림과 글씨, 문장에 모두 능해 많은 제자를 두었다. 노론과 남인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17세기 중엽 남인의 영수로 활동하는 등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 노년에는 스스로의 전(傳)과 명(銘)을 지어 후세에 전하게 하였다. 1682년 생을 마감하자 문정(文正)이라는 시호가 주어졌다.
 
미수 선생의 학문세계는 위로는 퇴계의 학문을 계승하고, 아래로는 성호에게 이어지게 하여 영남 성리학과 근기의 실학에 가교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훗날 실학사상을 형성하는 연원으로도 거론되고 있다. 그렇다면 그가 창원에 머물렀던 시기는 그의 학문이 온축(蘊蓄)되던 시기로, 창원의 지식인 사회와 유학의 근간에 큰 자양분이 되었음에 틀림없다. 그만큼 그가 지녔던 높은 학식과 폭넓은 견문은 이곳 창원의 풍광과 인사에 영향을 주고 혹은 받았을 것이다. 1708년 창원의 회원서원에 배향된 것도 그러한 결과물이 아닐까.
 
이제 선생은 가고 그 행적은 지난날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지만 유묵(遺墨)이 엄연해서 마치 그의 음성을 듣는 것과 같다. 가만히 귀를 기울여 스스로 새기면서[自銘] 후인들에게도 내려 준 경계의 말을 되뇌어 본다.
 
말은 그 행실을 가리지 못하고[言不掩其行]
행실은 그 말을 실천하지 못하였네[行不踐其言]
다만 자족(自足)하여 성현의 글을 읽었을 뿐[徒嘐嘐然說讀聖賢]
하나도 그 허물을 더는 데 보탬이 되지 않았도다[無一補其諐]
-『미수기언(眉叟記言)』권67, 자서속편(自序續編)-
 
천주산 정기를 한껏 머금은 달천계곡에는 오늘도 차고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진달래가 수를 놓은 봄날, 달빛이 드리워진 계곡의 오랜 풍경이 그려진다.
 
[참고문헌]
•  『미수기언(眉叟記言)』
•  김종하, 『창원군지』(국제신보출판사, 1962)
•  『문화유적분포지도』-창원시(창원시·창원대학교 박물관,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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